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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그릇 Vol.1 후기] <입말한식> 살아있는 음식을 기록하고, 맛보이는 입말한식가

올 한 해 마르쉐@ 출점자들이 많은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요리사와 농부 등 현장에서 자신의 손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저자들이 풀어놓은 맛있는 이야기를 <시장에서 맛보는 책 한 그릇>에 담아 갑니다. 지난 18년 12월 22일 마르쉐@명동에서는 책 한 그릇 첫번째 – <입말한식> 하미현의 이 땅의 팥죽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이야기와 함께 강냉이가 들어가는 팥죽, 제주도 팥죽, 새알심을 넣은 경상도 팥죽을 맛보기도 했지요. 시장에서 맛보는 책 한그릇, 그 첫 맛은 참 풍요로웠습니다.

 

만난 사람 아부레이수나 하미현, 소화농장 이병달 기획진행 이보은 마르쉐친구들 (이하 언덕)


<<아부레이수나 하미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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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식이나 인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미학을 전공하다가 우연치 않게 사찰음식을 만나며 음식을 가깝게 느끼게 됐어요. 또 2013년부터 마르쉐 시장에서 음식을 만들며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마르쉐에서 텃밭도 소개해주셔서 제게는 마르쉐가 정서적으로 음식 친정 같아요.

 

사찰을 다니며 전통음식을 배워보니, 요리할 때 꼭 몇 센티미터로 잘라야 한다는 엄격함이나 여러 가지 부분들이 재밌지가 않았어요. 그렇게 만든 음식이 내 입에 잘 맞지도 않았고요. 대신 마르쉐를 통해 여러 농부님들과 많이 만나며 여기 있는 팥처럼 개골팥, 쉬나리팥 등 입으로 전해지는 다양한 음식을 만나왔어요. 이 음식을 만드는 생산자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지요. 그러면서 지금 요리책에서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음식들을 과연 내가 잘 알고있나? 그것들은 누가 기록했을까? 사찰이나 궁궐처럼 그 시대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만 전달되고 누릴 수 있는 기록은 아니었을까? 내가 현장에서 농부님들의 이야기로 듣고 직접 맛본 음식들이 오히려 한국의 음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마늘 농가에 가보니 어머니는 마늘밥을 육수 없이 마늘만 넣어 달큰하게 드셨다면, 딸은 닭 육수를 내고 마늘대를 넣어 부족한 단백질을 더하셨어요. 이렇게 음식의 맛도 계속 변하면서 이어져 내려온거죠.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백년 넘게 이어온 마늘 종자가 가족에게 있기 때문이고요. “식재료가 사라지지 않으면 식문화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결국 이 농부나 토박이들의 텃밭에서 나온 작물들, 농부들의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통해 음식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 음식이 글이나 기록물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가족, 마을, 도시까지 퍼져나가고요. 이렇게 삶이 만들어내고 전해오는 요리의 지혜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게는 한국을 다시 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살아있는 음식을 기록하고, 맛보이는 입말음식가

 

요리사의 일 보다는 골동품 가게에서 물건을 수집하듯이 내가 만나는 음식을 수집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저에게 잘 맞아요. 그래서 요리사도 셰프도 아닌, 구전되는 음식 – 이 땅에서 내가 먹고, 살고 있는 입말한식을 소개하고 기록하자는 생각에 입말음식가라는 이름을 만들어 쓰게 됐어요. 옛날 것 같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찾다보니 접하게 된 농부들의 삶이 정말 멋져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기에 계속 이 일을 해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큰 뿌리가 되어준 분이 ‘뿌리깊은나무’의 한창기 선생님이에요. 그분의 글과 기록을 보면서 민중이 기록하지 못했던, 입말로 이어지는 역사가 곧 있는 그대로 우리의 뿌리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입말한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언덕 권력자의 언어가 아니라 생활자의 언어로 규정되는 삶 현장의 음식들을 소개하고, 기록하고, 맛보이는 일을 하는 게 ‘입말음식가’ 라고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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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말한식, 대를 이어 내려온 농부의 음식

 

‘아부레이수나’라는 브랜드를 통해 음식을 소개해왔어요. 아부레이수나는 경북 예천의 모내기 민요로, 서두르지도 게으르지도 않게 한 줄로 서서 잘 살아가보자는 뜻이에요.

 

아부레이수나가 정하는 입말한식의 첫 번째 기준은 다양성이에요. 예를 들어 오늘은 팥을 11가지 가져왔지만 사실 50가지 이상 있어요. 늘 봐온 파, 마늘, 고추 등등 1,800년의 한국 음식문화 안에서 켜켜이 쌓인 요리법을 통해 굉장히 다양한 음식으로 전달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한국음식도 낯익고 가까워서 보지 못했던 것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식재료를 통해 정말 다양한 사람을 보고, 한국을 새롭게 만나게 됐어요. 아까 말씀하셨던 마농지(마늘장아찌)나 50가지 종류의 팥도 그렇고 마트나 시장에서는 전혀 찾아보지 못한 맛이 토박이 연구가들의 음식 안에 있었어요.

 

두 번째는 농부와 토박이의 음식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말한대로 먹거리의 다양성을 가진 분들은 지역의 토착민들이세요. 호두도 하나의 종이 여러 지역에 토착화되면서 지역마다 다양한 호두가 존재하게 된 것처럼 사람도 한 곳에서 한 50년 이상 살며 그 땅과 지형에 익숙해지면 그렇습니다. 농부와 토박이들이 기억하고 보여준 음식들이 아주 낯설었지만 세련됐어요. 그때그때 나온 작물로 요리해먹는 음식의 별맛을 알고 있는 것은 농부들이고요. 농부는 먹을 시기를 잘 알고 배추도 씨앗부터 배추꽃, 배추대, 뿌리까지 다 먹어요. 제철에 배추를 뜯어 뿌리까지 먹을 때의 단 맛을 아시는 거죠.

 

세 번째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작물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예천의 이홍인 농부님은 농부의 아버님, 아버님의 아버님 때부터 계속 이어져온 식재료로 입말한식을 짓습니다. 제 책에 담긴 아홉 농부들도 기본적으로 토박이들을 찾아 뵌 거예요. 그분들이 제겐 선생님이지요.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먹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박제되어 끝난 음식이 아니라, 조금씩 변형되었더라도 지금의 나에게 맞는 음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언덕 우리나라가 쌀농사를 지은지 수천년 되었고, 1900년대 초까지 5천가지 종의 쌀과 1,400종 이상의 콩이 있었다고 하니 그 씨앗을 이어온 사람들에게 인이 박힌 맛, 지켜가려고 했던 삶이 궁금해집니다. 더불어농원 권태옥 농부님 인터뷰 중에 어머니가 농부님께 아이 낳을 때 쓰라고 수수 씨앗을, 장 담글 때 쓰라고 백태 씨앗을, 제사 때 고생하지 말라고 흰팥 씨앗을 주시는 등 시집 가실 때 씨앗을 바리바리 챙겨주셨다고 한 것이 생각났어요. 씨앗 불리듯이 살림도 불려나가라는 말씀과 함께. 이 책에 담긴 농부님들의 말씀에서 우리의 삶이 씨앗과 같이 이어지길 바라는, 삶에 대한 축언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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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이야기, 땅에서 길어낸 지혜

 

예천 소화농장의 팥이라는 식재료가 저는 정말 재밌었어요.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문상할 때도 팥죽을 보내고, 사람이 태어났을 때도 생일밥에 팥밥이 들어가요. 이렇게 삶과 죽음 안에 계속 자리하는 식재료가 흔치 않죠. 바깥은 붉은데 안은 하얀, 팥이 가진 대비성이 참 설화적이란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네다섯시간씩 농부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힘들 때도 있지만, 농부님의 이야기 속에서 카피처럼 꽂히는 말을 만나요. 삶을 살아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 나오는 거죠. 배워서 체득하거나 읽어서 아는 지식의 언어가 아니라, 땅에서부터 생존하며 살아온 사람이 내뱉는 말 안에 큰 감동이 있었어요. 이분의 삶이 그 음식과 식재료 안에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요. 소화마을의 팥 한알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는 걸 알게 되면 예천의 지형과 풍토, 역사가 다시 새롭게 보여요. 풍토에 따라서 식재료 맛도 바뀌니까요.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요. 한 사람 안의 씨앗을 찾아갔더니, 한 알의 씨앗 안에 사람이 있고 땅이 있고 역사가 모두 들어있었던 거죠.

 

 

농부의 요리에 담긴 ‘오래된 미래’

 

서양 요리책을 보면 “여성이 부엌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간소하면서도 영양가 있는 음식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많이 나와요. 사실 농부의 삶이, 물론 농한기 때 쉬고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하신 것 같지만, 그분들은 당연히 땅을 빌어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해요. 그럼에도 음식 하실 때 보면 장 몇가지와 제철 식재료를 가지고 뚝딱 음식을 해내시죠. 봄에는 봄동 맛있게 해먹고, 여름에 배추꽃 맛있을 땐 부각해먹고. 많은 손을 들이지 않고도 영양분이 넘치고, 보기에도 좋은 요리를 하세요. 지금 농부와 토박이들이 해드시는 음식의 문화가 진짜 미래의 맛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 음식을 낯선 눈으로 보고 우리 식탁에 끌어오는 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옥천에서 먹은 고추국수도 정말 신기한 게, 옥천에는 옻나무를 넣어 먹는 간장이 있어요. 풋고추를 따다 썰고 그 간장에 양념 몇가지 해서 얼음물에 국수를 말아 먹어요. 아주 간단한데도 고추향이 확 나면서 시원한 게 너무 맛있어요. 여름에 일할 때, 손님이 갑자기 왔을 때 먹는 음식이라고 해요. 저도 점점 그때그때 먹는 농부의 음식, 찰나의 음식맛에 많이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음식이 마시고 먹는 행위라면, 요리는 식재료를 헤아려 다스리는 일이라고 해요. 그 점에서 농부님들이 참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대를 넘어 축적된 음식을 삶 안에서 찾아내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요리하는 비법들은 늘 놀라워요. 그 안에서 발견하는 멋과 맛이 있죠. 저에게 요리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농부의 음식이라 답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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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과 모두의 것

 

입말한식을 하면서 한국을 낯설게 보고 싶은 마음이 깊어서 가급적이면 영어 라디오를 듣거나 일부러 한글을 안보기도 해요. 익숙하게만 보면 볼 수 없는 세상이 너무 많죠. 특히 몇몇 농부님들의 삶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같은 시기를 살고 같은 언어를 쓰지만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그분들의 삶 이야기가 한국적이라서 좋다는 생각보다는, 한 인간을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계속 낯설음 속에서 음식을 경험하기 위해서 1년에 한번씩은 실크로드를 따라 장독대가 있는 나라를 여행하고 있어요. 1560년대 영양의 장계향 할머니라는 사대부 집안 여인이 처음 한글로 쓴 음식책을 보면, 그때는 고추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라 김치를 산초로 만들었다고 쓰여있어요. 제가 살았던 부산에서도 산초김치를 해먹고요. 그런데 중국 귀주성(구이저우성)에 600년 넘게 이어져온 살림으로 유명한 소수민족마을을 갔을 때 보니 그곳의 할머니도 장계향 할머니가 쓴 것처럼 산초김치를 만들어 먹고 계셨어요. 그 옛날에도 이렇게 음식법이 바다 건너, 국가를 넘어 전해질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한 거죠.

 

또, 예산의 김형애 농부님이 만든 삭힌 김치는 김치의 원형이 이어져온 것이라고 해요. 예산에서 김치에 고기를 넣어 많이 드신다고 하던데 600년 된 귀주성 마을의 할머니도 돼지기름에 산초김치를 볶거나 쪄서 많이 드시더라고요. 그렇게 음식 안에서 또 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입말한식을 하면서, “우리 것이 최고” 라기보다는 지구인의 음식이 어떻게 서로 영향 받고 입말로 이어지고 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 소수민족마을의 산초김치, 한국 장기향 할머니, 예산 김형애 농부님의 삭힌 김치가 서로 연결되었던 기억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음식을 찾아볼 때도 너무 우리 것에만 갇히지 말자고 생각하게 됐지요.

 

언덕 일본 기후 현의 산 속 깊은 마을에 들어갔을 때, 그 마을 대표 전승음식이 배추에다 돼지고기를 버무려 절인 것이었어요. 알고보니 1900년대 초반에 한국에서 건너간 조선 벌목공들이 해먹던 음식이 그 마을의 전승 음식이 된 거였지요. 그렇게 삶과 삶이 연결되어 있고, 음식은 삶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적이고 보편적인 아름다움

 

음식을 통해 한국을 다시 보게 되고 한국을 여행하는 것이 정말 가장 큰 발견이자 행복이에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그렇고요. 이 길에서 제가 찾는 것이 단순히 한국 것이고 과거의 것이라 좋은 게 아니라, 지금 봐도 보편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은 분명해요. 이런 생각 아래 앞으로도 계속 한국인이지만 동시에 지구인이라는 시선을 갖고 살아가고 싶고, 그것이 입말한식으로 투영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식재료를 찾고 농가를 만나고 저 나름대로 지구를 여행하고 싶어요.

 

언덕 앞으로 미현 씨의 프레임 안에 담길 오래된 미래의 모습, 그 맛과 멋이 많이 기대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르쉐에서는 정말 많은 출점자들이 어마어마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계세요. 오늘 <입말한식>을 시작으로 이 시장에서 맛보는 책 한그릇을 계속 맛보아 가겠습니다.

 

 

<<이병달 농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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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오늘 이 자리에 세 가지 토종팥을 지금껏 이어오신 이홍인 농부의 아드님인 이병달 농부님이 함께하셨습니다. 농부님은 7년 전에 귀촌해 농사짓고 계시는데 책에서 “씨앗은 절대 지우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홍인 농부의 말씀이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Q. 씨앗과 토종 팥 이야기

 

예천에서 아버지랑 같이 농사짓고 있는 이병달입니다. 7년 전에 도시생활을 접고 귀농한 후 부모님과 농사지으며 판매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다양한 종자를 모으고 실험적인 작물을 많이 키우시는데, 재배가 굉장히 까다로워요. 처음에는 고대미라고 옛 무덤에서 나온 씨앗을 살려서 키운 쌀을 재배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쌀이 개량되어 바람이 많이 불어도 잘 쓰러지지 않게 됐는데 고대미는 갈대처럼 바람만 살짝 불어도 쓰러져서 재배가 까다로웠죠. 그렇게 어렵게 재배해서 농산물을 수확해도, 판로가 없었어요. 사람들한테 그냥 드려도 모르는 건 못 먹는거라고 생각하고 잘 안 드시더라고요. 차라리 껍질을 더 깎아서 찹쌀이라 하고 드리자 할 정도로 수익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 귀농을 결심했고, 부모님과 함께 재배한 농산물을 블로그에 홍보하며 요리하는 분들께 제가 이렇게 해먹으니 맛이 좋다고 알렸지요.

 

아버지는 웬만한 종자는 그해 재배를 못 하시더라도 다음해 쓸 수 있을 만큼 파종을 하세요. 그만큼 올해는 못하더라도 씨앗은 계속 남기자는 마음이죠. 그렇게 계속 이어온 것이 토종 팥이에요. 토종 종자를 이으면서 새로운 종자도 계속 재배중이고요.

 

언덕 아버님께서 요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할머님 손맛을 아버님이 이으신 것 같았어요.

 

저도 요리를 좋아하고 할머니로부터 많이 배웠어요. 할머니께서 솜씨가 좋으셔서 팥죽을 많이 해먹었지요. 지금 여기 있는 팥죽과 저희 것은 조금 다른데, 저희는 찹쌀, 새알도 넣고 밥처럼 해먹어요. 그걸 아버지께서 좋아하셔서 오늘도 저녁에 팥죽 했으니 먹으러 오라시더라고요. 제일 많이 먹는 건 게 팥을 볶아서 끓인 물을 차로 마시는 거예요. 팥의 구수한 맛이 좋고, 이뇨작용에 좋다고 해서 자주 끓여마시죠.

 

 

Q. 하미현 씨와 만나 같이 작업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솔직히 그전까지는 이 농사가 매년 해오던 것이라 파종시기, 수확량, 누구한테 어떻게 전달할지만 주로 생각했어요. 하미현 씨가 오셔서 같이 요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이 음식의 유래나, 어떻게 계승되었는지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죠. 이전까지는 앞만 바라보고 왔는데, 뒤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어요. 저도 음식을 어떻게 해먹으면 좋을지 인터넷으로라도 찾아보게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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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현

우리 고유의 식재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토박이와 농부의 음식을 연구하며 스스로 ‘입말음식가’ ‘아부레이수나(‘서두르지도 게으르지도 않게’라는 뜻이 담긴 경북 예천의 모내기 민요로, 하미현의 입말음식팀 이름)’라는 이름을 지어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의상학을 전공한 후 TV 광고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다 우연한 계기로 한국 음식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이후 각 지역의 기관 및 브랜드와 한국 팔도의 입말 음식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오늘날 식탁에 어울리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농부와 함께 제철 식재료를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KBS1 라디오 [싱싱농수산]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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