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2026년 3월] 균과 흙: 야생 발효와 미생물 떼루아 with Jason Ignacio White


지난 3월 5일 목요일, 마르쉐@는 로컬스티치 소공점에서 스스로를 '시민 과학자'라 부르는 발효 연구자, 제이슨 화이트(Jason Ignacio White)와 함께 발효의 본질과 한국의 발효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내일의 식탁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한 제이슨 화이트는 세계 곳곳을 돌며 발효를 탐구해가고 있으며 발효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느슨해진 관계를 다시 단단하게 연결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토양에서 시작해 우리 식탁 위의 미생물까지, 마르쉐@ 출점팀들과 제이슨 화이트가 함께 나눈 깊은 발효 이야기를 전합니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워크숍에 참여한 발효 생산자들이 정성껏 준비해 온 음식으로 풍성한 포틀럭 식사가 마련되었습니다. 치즈와 샤퀴테리, 갓 구운 빵과 직접 빚는 맥주, 와인, 그리고 깊은 맛의 장과 김치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미생물과 씨름하며 빚어낸 다양한 발효의 맛과 향이 한데 어우러져 공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저마다의 시간이 깃든 발효 음식을 함께 맛보고 나누며, 그간의 작업 고민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cf19ef5618f7c.jpgc74bf462d0f70.jpg

26169be17cfb1.jpg

포틀럭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숍은 생산자들이 생생한 고민이 담긴 질의응답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통역에는 홀썸의 배서영 셰프님이 재능기부로 참여해주셨습니다. 현장에서 오간 질문과 답변을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공유합니다. 발효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발효 여정에 신선한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


4a2fab0afebb5.jpg



첫 번째 세션에서는 <떼루아와 발효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발효의 근간이 되는 땅과 환경이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야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통 방식과 환경을 정교하게 통제하는 현대적 방식이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나누었습니다.


Q. 땅과 환경에 따라 발효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_ 공간 사부작

저는 이 질문에 '모든 것이 발효를 바꾼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지형마다 영양 상태와 pH 수치, 생태계가 다르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가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본다면, 역으로 발효가 토양의 생명력을 높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토양 전문가나 농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동안 발효를 경험하며 느낀 것은 미생물은 우리 삶의 모든 구석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소화 기관부터 토양, 심지어 작은 곤충들이 먹고 내뱉는 부산물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토양이 발효를 바꾸는 것도 맞지만, 인간 또한 발효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생물을 매개로 토양과 의식적으로 협력한다면 땅의 생명력을 높일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한국의 전통 농법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이런 방식들은 이미 현대 농업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미국의 대마 재배자들은 땅을 살리기 위해 한국식 농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육류나 채소를 발효시켜 유리 아미노산이나 젖산, 구연산 같은 천연 화합물을 직접 만드는 거죠. 이렇게 제조한 발효액을 토양에 공급하면 땅 속에 일종의 '통제된 생태계'가 형성됩니다. 이는 식물이 병드는 것을 막아주고, 유해한 곰팡이나 해충으로부터 땅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런 발효 농법은 서구권에서는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아시아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지혜로운 전통입니다. 


Q. 야생의 균이 특정 지역의 환경에서 이루어내는 전통 방식의 발효와 ‘실험실’의 발효가 어떻게 공생할 수 있을까? _ 치즈플로 
Q. 발효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균, 습도, 온도 등 환경을 통제해 일정한 품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발효의 현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_ 마하키친

사실 이 논의는 결국 토양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토양을 바라보던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화학 물질이나 독성 폐기물처럼 토양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리는 문제들에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야 합니다. 

많은 분이 '발효의 현대화'라고 하면 단순히 제품을 멸균하거나 전통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걱정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면 미생물도 진화합니다.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달라지죠. 우리가 아무리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고 싶더라도 시간은 흐르고 미생물을 진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기술로 특정 균을 식별하고 활용하는 '미생물 혁신'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자연주의자로서 '자연스러운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기에, 유전자의 변형이나 산업화와 같은 용어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지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힘이 그렇듯, 그것을 ‘누가 휘두르느냐’의 문제일 뿐, 선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사례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특정 효모의 유전자를 활용해 작물의 감염을 막거나, 멸종된 꽃의 향기를 복원하는 시도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아시아부터 남미까지, 세계 곳곳의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발효는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일정한 품질'은 곧 생존의 문제입니다. 정성껏 만든 결과물이 품질 관리 실패로 폐기된다면 그들의 삶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한국의 한 장 발효 시설을 방문했을 때, 저는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적합하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았습니다. 그곳은 전통 제조 방식은 계승하면서도 환경 조건은 정교하게 제어해 제품을 놀라울 정도로 일정하게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일관성이 한국 발효의 본질과 어긋난다고 주장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고, 황토로 만든 발효 배양기를 사용하는 등 전통을 지켜 나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산업화를 넘어선 '현대화'의 완벽한 사례였습니다. 제가 전 세계에서 본 장면 중 가장 경이로운 순간 중 하나였죠.

물론 대량 생산으로 규모가 커지면 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수백 개의 항아리를 일일이 세척하고 공기 흐름을 맞추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죠. 그래서 현대의 양조가들이 개인적인 신념에서 조금 물러나 금속 탱크를 선택하는 것은, 대중에게 안정적인 품질을 제공하는 데에 집중하겠다는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전통에 대한 애착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누구에게나 동일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 역시 매우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03e049ad512a5.jpg

ddefa134cb430.png8219de15d40dd.jpg

 

두 번째 섹션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각 분야에서의 발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발효'라는 공통점 아래 맥주와 치즈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분투하는 생산자들의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Q. 양조장에서는 제품의 재현성과 일관성이 중요하기에 시중의 정제된 효모를 현재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역에서 직접 채취한 야생 효모로 맥주를 만든다고 가정한다면 자체적으로 효모를 배양해야 할텐데요. 이 때 세대를 거듭하며 발생하는 리스크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어에 실패해 원치 않는 균이 섞였을 때의 대처법, 그리고 반대로 특정 배치의 발효 상태가 유독 좋다고 판단될 때 유지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_버드나무 브루어리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데이터 없이 단순 관찰에만 의존하다 보면, 명확한 해결책을 얻기보다 오히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만 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문 분석실이나 미생물학자와 협업하여 발효 과정을 철저히 검증하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이는 변화하는 미생물과 더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전통적인 스타터에서 다양한 효모와 박테리아를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하는 미생물이 제품에 확실히 축적되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봅니다. 누룩이나 메주 같은  미생물을 얻어 그 안에서 박테리아나 균류, 미생물 균주를 분리해 사용한다면 그 출처(Source)는 순수하고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천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하던 미생물과 지금의 것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환경이 바뀌면 미생물도 그에 맞춰 진화합니다. 우리가 늘 보던 익숙한 균들을 발견할 수도 있지만,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우리 발효의 일부가 된 낯선 미생물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맥주 산업은 아주 오랫동안 이런 분리 균주들을 사용해 온 분야입니다. 대개 양조가들은 지역 효모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효모들을 혼합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제가 추천하고 싶은 방향은, 지역 내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생산자들이 힘을 모아 전문가에게 균 분리를 공동 의뢰해 보는 것입니다. 로컬 협업을 통해 개별 양조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해소하고, 생산 과정에 우리 지역만의 진정한 '떼루아(Terroir)'를 담을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원치 않는 균이 섞여 들어 갔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반드시 '실패'로 단정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그 균이 가진 의외의 장점을 발견하는 유연한 관점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전통주에서 풍미를 살리는 바나나 향을 내는 균이, 와인을 만들 때는 반드시 피해야 할 오염균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실패가 야생 발효 맥주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의도된 훌륭한 결과물이 될 수 있는 법입니다. 생명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이상 모든 미생물은 저마다의 쓰임새와 자리가 있는 법입니다.

사실 저는 예상치 못한 균의 등장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현재 제품 개발이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하는 R&D(연구 개발) 단계라고 해봅시다. 의도치 않은 야생균에 감염되었는데, 막상 맛을 보니 그 풍미가 묘하게 매력적이라면 어떨까요? 그럴 때는 실망하기보다 그 배치에서 여러분만의 효모 배양액을 추출해 보세요. 그것을 다시 배양하며 어떤 조화로운 풍미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실험해 보는 겁니다. 때로는 현장에서의 '문제'가 장기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승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전통주처럼 자연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많은 작업일수록,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하려다 실패했을 때의 상실감은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접종 방식을 택했다면 실패했을 때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제가 미생물학자나 전문 인력을 내부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발효는 결국 원하는 균을 '분리'해내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소규모 생산자들을 만나보니,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효모 전문가를 곁에 두고 있었습니다. 거창한 실험실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장비를 갖춘 작은 방 하나면 충분합니다. 외부 연구소에 균주를 맡길 수도 있겠지만, 오가는 과정에서 감염될 위험을 생각한다면 양조장 내부에서 직접 균을 식별하고 소규모로 배양하며 테스트할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수준 높은 양조장을 지속하려면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물론 소규모 공동체나 토착 생산자들에게 전문 인력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생물과 더 깊이 대화하고 우리만의 고유한 맛을 지켜내기 위해, 어느 시점에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지점입니다.



Q. 한국적인 재료를 물리적으로 첨가하는 것 외에, 치즈에 적용해 볼 만한 한국적인 균이나 의미 있는 시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_ 치즈플로

한국적인 균으로 치즈를 만드는 시도에 있어 제 첫 번째 추천은 단연 '메주'와 '누룩'입니다. 이 안에는 지방 분해 효소(Lipase)와 단백질 분해 효소(Protease) 생성이 아주 활발한 미생물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아스퍼질러스 루츄엔시스(Aspergillus luchuensis)나 아스퍼질러스 오리제(A. oryzae) 같은 균주들은 메주와 누룩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균들을 치즈 표면에 번식시켜 '2차 숙성'을 진행해 보세요. 단백질이 어떤 방식으로 분해되고 지방이 어떻게 변형되는지 테스트하다 보면, 서양의 치즈와는 전혀 다른 우리만의 풍미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관련 논문도 상당히 많으니 해당 키워드로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만 이 방식은 단백질 분해와 지방의 변형 속도가 전통적인 치즈와 다르기 때문에, 숙성 온도와 습도를 아주 정밀하게 조정해야 합니다. 효소 작용이 너무 빨라지면 숙성이 지나치게 진행되어 풍미가 애매하게 변하거나 좋지 않은 뒷맛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밀한 온도와 습도 조절'입니다. 최근에는 이를 활용해 숙성 기간을 단축하면서도 풍미와 질감을 끌어올리는 '가속 숙성(Accelerated aging)' 방식이 많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스타일 면에서는 아미노산 함량이 높고 단백질 분해 과정이 중요한 하드 치즈 계열에 잘 어울립니다. 또한 곰팡이가 내부에서 자라는 블루치즈보다는, 브리처럼 표면에서부터 숙성이 필요한 치즈에 아스퍼질러스가 더 적합합니다. 실제로 저도 아스퍼질러스를 활용해 브리치즈를 만든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미생물이 마법처럼 작동하길 바라지만, 미생물마다 고유한 기능과 작동 조건이 모두 다릅니다. 따라서 현재 사용 중인 컬처가 어떤 효소를 생산하고 어떤 방식으로 분해하는지 먼저 정확히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다음 한국의 전통 스타터 컬처들과 비교해 보며 기능이 겹치는 지점을 확인하고, 어떤 균이 기존 역할을 대신하거나 새로운 맛을 제안해줄 수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런 단계를 거치다 보면 여러 치즈 중 특정 스타일에 가장 적합한 지역 스타터 컬처를 찾아내어 독창적인 맛을 완성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be19cef14e4a8.png


세 번째 세션의 주제는 '발효와 언어'였습니다. 발효가 빚어낸 낯설고도 경이로운 맛을 대중에게 어떤 언어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특히 한국의 장(醬)이 가진 고유한 깊은 맛을 어떻게 언어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Q. 새로운 발효를 시도하다 보면 야생 균이나 생소한 미생물들이 빚어낸 아주 낯선 맛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이 맛이 정말 좋은 맛인지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미생물이 만들어낸 경이롭고도 생소한 맛의 지점을 만났을 때, 우리는 대중에게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맛있다’라고 전할 수 있을까요? _큔

개인적으로 저는 건강이나 소화가 잘 된다는 등의 이유로 발효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발효를 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맛'입니다. 우리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 갈 때 '이 음식이 내 소화를 도와줄 거야'라는 걸 최우선 순위에 두지는 않잖아요? 보통은 감각적인 경험을 원해서 레스토랑을 방문하고, 운이 좋다면 그 음식에 담긴 농업적인 메시지를 읽는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발효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품을 만들 때 항상 '열린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장에 가거나 전 세계의 제품을 직접 맛보며 그 카테고리의 표준이 무엇인지 연구해야 합니다. 생산자가 자신의 컴포트 존을 벗어난 '낯선 맛'을 만났을 때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레퍼런스 포인트'가 분명해야 합니다. 레퍼런스 포인트가 없이 어둠 속에서 총을 쏘듯 시작한다면, 생소한 맛을 만났을 때 그것이 경이로운 발견인지 아니면 그저 결함이 있는 맛인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독특한 풍미는 환영받지만,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괴상한 맛은 대중에게 도전이 될 뿐입니다. 고객을 시험에 들게 하기보다, 발효의 역학을 이해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그들을 배려하는 맛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발효를 지속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반 대중을 위한 발효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도 늘 염두에 둡니다. 대중을 상대하는 생산자라면 제품의 '카테고리 의존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콤부차나 치즈처럼 특정 카테고리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제품을 선택합니다. 만약 신맛도, 탄산도 없고 차(tea)조차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만든다면 과연 그것을 콤부차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낯선 풍미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의도치 않은 '오염된 맛'과는 엄격히 구분해야 합니다.

미생물은 경이롭지만 마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발효를 연구할 때 문화적 방식 뿐만 아니라 '농업적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텍사스에서 김치를 만들 때, 한국과 똑같은 재료는 없었지만 주변 농산물 중 김치의 풍미를 낼 수 있는 재료들을 찾아냈습니다. 미생물을 마법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조건과 기능을 이해하려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게 됩니다. 재료의 성분(전분, 단백질, 지방)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생물이 이를 어떻게 극대화할지 따져보는 것, 이것이 저에게는 발효입니다.

지금 전 세계 발효인들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지점은 '본연의 가치(Authenticity)를 해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맛을 안정화할 것인가'입니다. 미생물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재료를 이해할수록, 우리는 풍미를 더 정밀하게 통제할 수 있습니다. 표준 운영 절차(SOP)를 따른다면 발효의 일관성은 생각보다 쉬워집니다. 생산 과정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연습과 연구, 다른 발효 전문가와의 교류가 뒷받침된다면 일관성 있는 풍미를 설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또한 발효에 대해서는 정말 낭만적인 사람입니다. 제 발효물들과 아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죠. 결코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발효를 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심오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은 그저 오늘 밤 마실 맛있는 음료나 빵이 필요할 뿐일 수도 있으니까요. 대중의 기질을 고려하면서도 나만의 기준점을 잃지 않는 것, 그 균형 속에 우리가 찾는 언어와 맛이 있을 것입니다.


Q. 일본의 '우마미'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만의 깊은 장(醬) 맛을 우리만의 언어로 어떻게 정의하고 표현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_큔

맛은 자연의 언어입니다. 이미 자연 안에는 그 언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만의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려고 하니 어려움이 생깁니다.

이 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여정이므로  스스로 감각하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 역시 전문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 폭넓은 테이스팅과 발효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감각을 믿어 왔습니다. 그 맛이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꼭 복잡하고 어려운 전문 용어를 써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 맛은 정확히 이것이고, 저것이다.’라고 정확한 용어로 규정하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많은 맛을 세밀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이 느낀 감각을 본인만의 솔직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세요.

말씀하신 일본에서 유래된 '감칠맛(Umami)'라는 단어는 유리 아미노산 함량이 높은 제품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는데요. 문화적 측면을 걷어내고 본다면 감칠맛은 발효의 부산물, 즉 유리 아미노산으로부터 강한 감각적 자극을 느끼는 상태를 설명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다양하고 깊은 풍미를 가진 발효 식품들을 경험해 보니 이에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조 공정뿐만 아니라 진화 과정, 그리고 최종 결과물까지도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가장 표준화된 산업적 방식의 일본 간장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발효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메주에 비해서는 다소 단순한 '누룩(Koji)'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양조 과정에서 수많은 발효의 요소가 축적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간장의 맛을 '우마미'라고만 부르는 것 역시 발효라는 경이로운 과정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못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발효는 자연의 표준화이고, 한국의 발효는 자연과의 협업이다.' 라는 말을 저는 자주 합니다. 현재 한국 문화 안에서 '한국 고유의 발효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젊은 세대들이 전통 발효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한국 발효만의 입체성과 복잡성을 정의할 수 있는 용어를 찾아야 합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이 작업을 한국 발효 커뮤니티 차원에서 힘을 합쳐 한국 발효의 풍미를 어떻게 정의하고 식별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 복합적인 맛의 세계를 정의하는 도전을 공동체의 과제로 삼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78f6af5331ddb.jpg


네 번째 세션은 현장에서 나오는 생생한 질문으로 채워졌습니다. 


Q1. 부패와 발효는 한 끗 차이라고들 합니다. 이 경계를 감각적인 부분으로만 캐치해야 하는 것일까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실험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_락희

제가 Thread(앱 '스레드')에 올린 유일한 게시물이 바로 발효에 대해 제가 직접 쓴 문구에요.


Fermentation is one of those weird occurrences in nature where humans intentionally create something only to watch it decompose and when it decomposes it produces something that's more valuable to us.

발효란 자연에서 일어나는 기묘한 현상 중 하나로, 인간이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만든 뒤 그것이 부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패의 과정은 우리에게 더욱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상한 것과 발효된 것의 간극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맛을 카테고리화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썩은 것은 보통 통제되지 않은 분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해 또한 발효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경계는 항상 종이 한 장 차이죠. 하지만 저는 생물학적 존재인 우리 인간의 신체에는 무엇이 이상하고 거부감이 드는 것인지 알려주는 내면의 프로그램이 있다고 믿습니다. 

발효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감각이 일반인에 비해 더 익숙할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단순히 맛만 보지 말고 향을 몸으로 이해하며 밀도나 질감 등 모든 감각적인 요소를 세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효를 하며 이상한 지점을 경험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요거트처럼 끈적하게 늘어나는 질감과 단순한 액체처럼 흐르는 질감이 주는 차이를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발효 과정에 사용하기 시작하면,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훨씬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아무런 지식 없이 발효를 시작하면 많은 실수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충분히 공부한 뒤에 시작한다면 발효의 여정은 훨씬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또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면 퀄리티 컨트롤(QC)과 안정성 검사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연구 결과가 나왔을 때 단순히 관할 기관의 승인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데이터를 내부로 가져와 공정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지표로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Q. 발효라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면서 개인적인 성격이나 삶에 일어난 변화가 있으신가요? _입말음식

발효를 통해 저는 자연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로맨틱’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피클을 만들고 싶다'는 의욕을 넘어,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또 그들과 연결되는 감각을 얻은 것입니다. 자연은 제 영혼을 끌어당기고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고, 자연의 냄새와 질감, 느낌 등 모든 세밀한 것들이 저에게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발효와의 관계가 훨씬 더 밀도 높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발효를 매개로 전 세계의 토착 문화를 접하며 다양한 층위의 삶을 경험한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자 특권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효를 지나치게 엘리트적인 태도로 대하는 사람들도 만났고, 반대로 너무 거칠게 다루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발효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며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연에 대한 사랑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발효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 주었습니다.


Q. 발효 실험실에서 작업하실 때 세니타이저나 니트릴 장갑 등을 철저히 착용하시나요? 우리 몸과 손도 균의 집합체인데, 미생물을 철저히 차단하며 작업하시는지 혹은 자연스럽게 오픈된 방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_울퉁불퉁팩토리

이번 한국에서의 여정은 제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번 여행 전의 저를 만났던 사람들은 저를 정말 지독할 정도로 예민한 발효가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제가 맞춰야 했던 기준들은 비현실적이었고, 함께 일했던 셰프들은 모든 결과물이 매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기를 기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발효라는 행위 안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디인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는 생명체들, 그리고 자연과 협업하며 그 과정을 관리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때로는 대자연이 규칙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을 때도 있죠. 그렇다고 해서 결과물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100% 규정될 수 없는 자연의 그 '팽창하는 생명력'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노마'는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발효의 메카처럼 우러러보죠. 노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멸균하고, 저온 살균하고, 모든 것을 닦아내고 무한히 계산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제가 노마의 발효 실험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메뉴에는 무려 35가지의 발효물이 들어갔습니다. 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수백 리터의 재료를 들어 올리고, 화상을 입어가며 완벽함을 쫓으며 세상에서 가장 미친 듯한 시도를 했습니다. 멋져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일이었습니다. 자연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여 표준화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정수를 담아내려 할 때, 거기에는 반드시 균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 자체가 사실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죠.

노마에서의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평준화하고 틀에 가두는 방식이 결코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발효는 하는 사람의 성품, 마음가짐, 기분이 맛으로 그대로 투영되는 과정입니다. 멸균된 환경에 미생물을 가두고 특정 작업만 수행하도록 통제한다면, 미생물 역시 그 '우울함'을 맛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가두어두면 결국 불안해지거나 반항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발효의 진짜 메카는 여기,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 사람들이 발효를 대하는 기준, 그리고 제품 속에 담긴 무작위성과 예측 불가능함이야말로 발효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앞으로 저는 조금 더 시적인 방식으로 발효를 해 보려 합니다. 


71a2c6a0b0cd3.jpg


마지막으로, 제이슨 화이트가 한국의 발효 현장을 직접 방문하며 느낀 점을 전하며 워크숍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한국 여행은 저의 삶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발효 문화야말로 자연의 본질을 가장 사려 깊은 방식으로 담아내는 커다란 그릇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경험은 제가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주변과 연결되어 왔는지 그 모든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때로는 그동안의 제 모습이 스스로 바보처럼 여겨질 정도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발효에 관해 수많은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곳입니다.
저는 이번 여행 이후, 마치 처음 발효를 시작하던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번 경험은 저의 눈을 뜨게 하고 영혼을 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견을 덧붙이자면, 저는 한국의 장(醬) 문화가 일본처럼 산업화하여 세계화하는 길을 걷기보다는,
지금의 전통적인 형태를 소중히 보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제이슨 화이트의 시선을 통해 우리 발효만이 가진 고유함과 그 안에 깃든 복합성을 다시금 발견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을 통제하기보다 기꺼이 대화하고 호흡하는 한국식 발효의 의미와 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술의 영역을 넘어 발효의 본질을 뜨겁게 논의했던 이 대화들이 이제 각자의 작업실에서 저마다의 맛으로 깊게 발효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제이슨 화이트 워크숍과 함께한 마르쉐@ 요리팀들의 생생한 발효 이야기는 3월 29일 일요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에서 열리는 <DDP 디자인 마켓 : 마르쉐@발효> 에서 직접 듣고 맛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이어질 더 깊은 미생물과 발효의 세계에 함께해 주세요!



〰️

함께한 사람들

(사)내일의식탁, 마르쉐친구들(진행), 정혜민 셰프, 홀썸, 공간 사부작, 꿀꺽하우스, 델레떼, 락희, 머곰, 밭으로, 버드나무브루어리, 버터팬트리, 벗밭
보리테이블, 뿌리온더플레이트, 아까h, 우리집젤라또, 울퉁불퉁팩토리, 이양지의 부엌학교, 입말음식, 정혜경 선생님, 치즈플로, 큔, 태평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