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2026 퇴근 후 마르쉐_봄> "세상의 모든 채소를 만나는 게 꿈이에요" 봉금의 뜰 김현숙 농부님과의 대화

밭에서 식탁으로, 농부와 시민이 마주 앉은 저녁


389e23c3971af.jp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에게 봉금의 뜰 텃밭을 보여주고 있는 벗밭의 가영


매일의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에 지쳐갈 때, 그 일상을 깨고 2주에 한번 도심 속 한 장소에 모인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공간을 나설 때 허기졌던 마음에는 제철의 풍성함이, 지쳤던 눈빛에는 생기가, 양손에는 마르쉐 농부시장과 농부님의 밭에서 갓 공수해 온 싱싱한 채소꾸러미가 들려 있습니다.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행위를 넘어, 제철의 감각을 깨우고 생산과 가까운 식사를 일상으로 가져오려는 '퇴근후마르쉐' 식구들입니다.

지난 3월 중순에 열린 두 번째 식탁은 <봉금의 뜰> 김현숙 농부님, <팀화요> 심은리 셰프님과 함께했습니다. 멀리 양평에서 꾸러미를 가득 들고 오신 현숙 농부님께서 식재료 하나하나를 소개해주셨는데요. 냉이, 달래, 카모마일, 수레국화, 고수, 루꼴라, 파, 망초 등 추운 겨울을 버텨낸 봄풀들부터 말린 나물과 고춧잎, 무말랭이, 그리고 밥에 넣을 청서리태와 땅콩까지. 여기에 돼지감자차와 최요왕 농부님의 양배추, 딸기가 더해져 풍성한 한 상이 차려졌습니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온 채소들에는 그 이상의 마음이 꾹꾹 담겨 있었습니다. 

퇴근후마르쉐를 하며 수많은 농부님의 얼굴을 뵙고, 농부가 땀 흘려 길러낸 작물로 식사를 차리는 과정을 오롯이 겪다 보면 감사함은 자연스러운 결론이 됩니다. 그 따스하고 반짝였던 봉금의 뜰 김현숙 농부님과의 대담을 전합니다.

*[팀 화요]란? 누구나 밭에 놀러오라는 봉금의 뜰 농부님의 초대에 응하여 제각각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지금은 화요일마다 밭에 모여 함께농사짓고 밥지으며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팀화요'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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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에게 꾸러미 채소를 설명하는 김현숙 농부님


수빈: 안녕하세요 농부님, 인터뷰를 읽을 독자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현숙 농부님: 안녕하세요, 양평에서 2,000평 정도의 텃밭을 가꾸고 있는 봉금의 뜰 김현숙 농부입니다. 봉금은 저희 엄마 이름이에요. 농사를 지은 지는 12년이 되었습니다.

수빈: 방금까지 퇴근 후 마르쉐 식구 분들과 한 자리에 같이 있었잖아요 농부님, 보시면서 어떤 인상을 받으셨어요?

김현숙 농부님: 너무 좋네요. 다들 이렇게 요리에 진심일 수 있나요? 몇 년 전에도 퇴근 후 마르쉐 농가행으로 오셔서 밭일도 도와주시고 식사도 같이 하셨는데, 그때도 신기하긴 했거든요. 인스타에 올려주신 것들을 보면서 '서울에서도 이런 뜻을 가지고 모이는 분들이 많구나' 하고 신기했어요.

수빈: 퇴근 후에 지친 상태로 오셨는데도, 막상 시작하면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나지요.

김현숙 농부님: 그러니까요. 호기심으로 가득한 분위기를 보면서 '우와, 나 농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빈: 그런 말씀 들으니까 너무 감동이에요.

김현숙 농부님: 진짜요? 저도 되게 감동이었어요. 신기하네요.

수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해가 갈수록 '퇴근 후 마르쉐'에 참여하시는 시민 분들 중 요리나 건강한 먹거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참 희망적인 이야기네요.

수빈: 맞아요. 저희도 해가 갈수록 더 큰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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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현숙 농부님


활동가에서 농부가 된 이야기

수빈: 예전에 활동가셨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농사를 짓게 되셨는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봐도 될까요?

김현숙 농부님: 뭐랄까요, 일하다가 번아웃이 된 것도 있었고... 제가 노동 쪽으로 활동을 오래 했거든요. 결정적인 계기는 이주 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일할 때였어요. 그때 가톨릭 농민회와 인연이 닿으면서 농부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죠. 그때가 WTO 문제로 농촌이 점점 더 어려워지던 시기였어요. 그때 농민들이 대거 홍콩으로 건너가서 원정 투쟁을 한 적이 있어요.

수빈: 홍콩이요?

김현숙 농부님: 네, 한 15년에서 20년 전쯤 됐을 거예요. 전국에서 천 명이나 되는 농민이 남의 나라 홍콩까지 가서 운동을 한 거죠. 신기하죠?

수빈: 다큐멘터리로 남겨야 할 이야기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아마 기록이 어딘가 있을 거예요. 그때 가톨릭 농민회 분들이 가실 때, 저는 연배가 있으신 농부님들의 생활 통역자로 따라갔어요. 그때 이분들과 친해졌고, 돌아와서 그분들 농장에도 가보니까 '농사를 지으면 참 평화롭겠다'라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더라고요. 하지만 당장 뛰어들 수는 없었죠. 저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활동도 도시에서 했으니까요. 그러다 두물머리 농지를 지키려는 농부들이 4대강 투쟁을 시작하면서 농사일을 배우게 됐어요. 당시 농부님들이 정말 바쁘셨거든요. 농사지을 틈도 없이 재판받으러 다니고, 소송당하고, 데모하러 다니셨으니까요. 그때 제가 대신 밭을 돌봤어요. 오이도 심고 딸기도 따면서요. 농사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때가 2009년~2010년쯤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농부님들과 친해지면서 아예 사는 곳도 옮겼고, 그렇게 농부가 됐어요. 그분들이 함께하면 좋겠다고 해주셔서 시작했는데, 하길 잘한 것 같아요. 벌써 12년째네요.

수빈: 농부님들이 바쁜 일로 비운 밭을 도우려고 시작하신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군요.

김현숙 농부님: 그때 그분들에게 밥도 지어드리고 그랬어요. 거기서 나오는 채소로요. 사실 요리는 잘 못 했지만, 어쨌든 고생하시는 농부님들을 잘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열심히 했죠.

수빈: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길 더욱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농부님들도 바쁘면 라면이나 김밥으로 식사를 자주 때우시나봐요.

김현숙 농부님: 맞아요, 그 모습 보는 게 좀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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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을 바라보며 경청하는 김현숙 농부님(왼)과 팀화요 심은리 셰프님(오)


봄이 되면 아욱죽이 생각나요


수빈: 그때 농부님들께 차려주셨던 요리들이 궁금하기도 해요.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나요?

김현숙 농부님: 저는 봄에 나오는 '아욱죽'이요. 아욱죽은 양평의 스페셜티 같은 거예요. 원래 채소죽이라는 게 양을 불려 먹는 거잖아요. 밥에 아욱을 넣으면, 아욱 특유의 끈적끈적한 성분 때문에 그냥 밥을 넣어도 찰밥처럼 느껴져요.

수빈: 오 신기해요! 멥쌀을 넣는데도 그렇게 걸쭉해지나요?

김현숙 농부님: 네, 찬밥을 넣어도 아욱에서 나오는 성분이 그렇게 만들어줘요. 그리고 죽은 쌀을 조금만 넣어도 양이 아주 많아지잖아요. 그래서 아주 어려웠던 춘궁기 때 먹던 특식이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그 이후로 해마다 봄이면 아욱 씨를 뿌리고, 아욱죽을 쑤어서 모내기 때 같이 먹어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수빈: 새참으로 먹기에도 좋겠어요.

김현숙 농부님: 네, 동네 할머니들도 그렇고 다들 정말 좋아하세요. 아욱죽도 좋아하셨고, 그분들이 직접 기른 단호박을 넣어서 단호박 영양밥을 해드렸을 때도 참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수빈: 그러면 농부님은 요즘은 어떤 음식을 자주 해 드셔요?

김현숙 농부님: 좀 슬픈 이야기지만, 요새는 통 밥 해 먹을 기운이 안 나더라고요. 팀화요 친구들이 오는 화요일에만 제가 밥을 해요. 팀화요 분들이랑 같이 농사도 짓고 있어서, 우리가 거둔 쌀이랑 제가 기른 땅콩이나 이런저런 것들을 듬뿍 넣어서 잡곡밥을 지어 같이 먹죠. 콩이 정말 맛있거든요. 또 밭에서 풀들이 나오면 샐러드를 해서 먹곤 해요. 제가 양배추 절임을 좋아하거든요.

수빈: 아, 양배추 절임요! 오늘 같이 먹기로 한 거네요.

김현숙 농부님: 네, 그게 저한테는 소스 같아서 다른 거 아무것도 안 넣고 그것만 있어도 맛있어요. 거기다가 밭에서 난 풀들 섞어서 먹는 걸 참 좋아하죠. 비빔밥도 해 먹고요. 지금은 그렇게 먹고 살아요.

수빈: 농부든 어떤 직업이든, 식사를 포함한 내 일상이 평안해야 일할 기운이 생기는 것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맞아요. 그런 점에서 팀화요 분들이 정말 든든해요. 반찬도 많이 해주시고, 일부러 넉넉히 해서 남겨두고는 "힘들 때 드세요" 하며 주시거든요. 농사일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면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수빈: 팀화요와 농부님 간의 다정한 관계 이야기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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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e590da37a88.jpg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이 가져가는 채소 꾸러미의 한 종류들 / 청서리태와 양배추, 샐러드채소들


세상의 모든 채소를 만나는 게 꿈이에요


수빈: 어느 덧 봄이 왔는데요, 양평에 있는 봉금의 뜰 농장에서는 요즘 어떤 작물들이 자주 보이나요?

김현숙 농부님: 지금 제가 심은 것 중에는 마늘과 양파가 잘 자라고 있어요. 겨울에 심은 것들이니까요. 작년에는 상황이 좀 어려워서 시금치 같은 건 못 했는데, 대신 루꼴라나 고수 같은 게 이제 조금씩 나오고 있어요. 모종도 기르고 있고요. 제가 육묘장이 한 50평 정도 되는데, 제가 직접 채종한 것들도 있고 사람들이 심어보라고 준 것들도 길러요. 특히 우리 팀화요 셰프님들이 외국에 나갈 때마다 씨앗을 얻어다 주시거든요. 제 꿈이 '세상의 모든 채소를 만나는 것'이라서 우리나라에서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다채롭게 심어보려고 해요. 종류가 100가지도 넘을 거예요.

수빈: 농부님의 꿈이 전 세계 채소를 만나는 거라니, 너무 낭만적이에요!

김현숙 농부님: 제 이력서에도 '세상의 모든 채소'라고 써놓긴 해요. 많이 시도해 봤는데 잘 안되는 게 많긴 하죠. 렌틸콩이나 병아리콩 같은 콩 종류를 좋아해서 심어보는데 참 어렵더라고요.

수빈: 농부님 콩을 좋아하시는군요?

김현숙 농부님: 네, 근데 잘 안되네요. 셰프님이 작년에 팔레스타인 가서 요리하실 때 가져온 씨앗들도 심어봤는데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되더라고요. 기후나 지역이 달라서 그런가 봐요. 인도에 있는 지인은 후추를 주기도 하고, 계피 같은 것도 주는데 기온이 안 맞으면 안 되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도 일단 해보긴 해요.

수빈: 일단 해보신다니 대단하세요!

김현숙 농부님: 잘 돌보지 못할 때도 있고 공부를 깊게 안 하고 무모하게 심어보는 면도 있죠.

수빈: 농부님은 심는 것 자체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먹는 것과 기르는 것 중에 선택하라면 기르는 걸 더 좋아하시는 걸까요?

김현숙 농부님: 네, 심고 가꾸고 기르는 거요. 일종의 '경작 본능' 같은 거죠.

수빈: 농부의 피가 흐르시는군요!

김현숙 농부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요? (웃음)

수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무언가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게 기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저도 그게 너무 좋아서 사람들에게 자꾸 길러보라고 권해요. 스티로폼 박스나 화분이 됐든, 모든 사람이 집에서 작게나마 도시 농부처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제일 좋은 건 텃밭 상자로 시작하는 건데, 그런 게 어려우면 제 밭으로 초대를 해요. 제 밭으로 오는 팀화요 셰프님들도 그래서 점점 많아지는 거고요. 양평이 서울에서 가깝잖아요. 강서구 쪽에서 오시는 분은 2시간 정도 걸리는데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밭으로 오세요. 지칠 법도 한데 그렇게 오시더라고요.

수빈: 밭이 주는 힐링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저희 팀 멤버도 2주마다 홍성에 있는 밭에 가는데, 언덕이 주는 치유감이 엄청나서 매번 갈 때마다 쉬러 간다고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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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퇴근후마르쉐 참여자들이 가져가는 채소 꾸러미의 한 종류들 / 말린 돼지감자


7957fde55a1d9.jpg사진 : 경청하는 퇴근후마르쉐 참여자의 모습


실제로 행동하는 분들은 소비자들이구나 싶거든요


수빈: 참, 2년 전 '퇴근 후 마르쉐' 첫 시즌에서 농가행도 같이 하셨잖아요. '퇴근 후 마르쉐'라는 제안을 듣고 어떤 마음으로 같이 하겠다고 하신 건가요?

김현숙 농부님: 저는 마르쉐가 제안하면 뭐든 다 한다고 해요. (웃음) 그런 기회를 주는 게 너무 고맙잖아요. 사실 제가 마르쉐에 출점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에요. 최요왕 농부가 먼저 딸기로 나갔었는데, 혼자 나가기 뻘쭘하니까 같이 가달라고 해서 안국동에서 했을 때 처음 따라나갔죠. 근데 시장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더라고요.

수빈: 저도 마르쉐 시장이 참 재밌어요. 오시는 시민들이 뭔가 다른 느낌이랄까요, 농부를 정말 궁금해하더라고요. 마트에서는 농부를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특히 저같은 젊은 세대들은 농부와 가까워지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마르쉐가 그런 연결을 참 잘해주시는 것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그리고 홍보를 엄청나게 해주세요. 저는 페이스북만 했었는데 인스타 계정도 열어주시고, 심지어 방송국에서 연락이 올 때도 있어요. 저는 노출된 적이 별로 없는데 마르쉐가 그런 역할을 다 해주니까, 제가 제안을 받으면 당연히 고맙고 반갑죠. 제가 그 기대에 잘 부응하지 못해서 그렇지요. (웃음)

수빈: 무슨 말씀을요, 정말 잘하고 계시는걸요! 농부님이 마르쉐 시장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들일까요?

김현숙 농부님: 소비자들이 막 너무 반가워해 주시고, 이것저것 궁금해하시고... 또 팬이나 단골분들을 만날 때죠.

수빈: 농부님은 정말 단골이 많으실 것 같아요.

김현숙 농부님: 장소가 어디든 제가 있는 곳을 직접 알아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미리 메모지에 "이거 사려고 했다"라고 적어 오시는 걸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들죠. 마르쉐 소비자들을 보면서 각성되는 기분도 느껴요. 생산자를 이해하려고 생각하고 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이 더위에 오죽했겠나', '이런 기후에 농사지어줘서 고맙다' 같은 표현을 직접 해 주시는 분들이 바로 마르쉐 분들이에요. 제가 처음에 가장 신경 썼던 게, 저는 주로 제철 채소를 하니까 채소가 시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수빈: 채소가 시드는 거요?

김현숙 농부님: 네. 저는 시장 나갈 땐 늘 당일 아침에, 이슬이 맺혀 있을 때 채소를 따거든요. 토마토나 오이 같은 과채류는 전날 준비하기도 하지만, 잎채소는 무조건 새벽에 작업해요. 그렇게 이슬이 촉촉하게 맺힌 걸 들고 나가도 저녁때쯤 되면 다 축 쳐지고 널브러져 있잖아요.

수빈: 맞아요, 뭔지 알아요.

김현숙 농부님: 그래서 어떨 때는 채소를 하나하나 비닐 포장을 하기도 하는데, 마르쉐는 그런 걸 지양하시니까 신문지나 종이봉투에 담아드리거든요. 그런데 소비자분들은 그것에 대해서도 너무 좋게 생각해주시고, 나중에는 아예 직접 주머니를 들고 오셔서 거기에 담아가세요. 저는 가능하면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결심이 있어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는 있지만, 제 일상생활까지 완벽하게 친환경적이지는 않거든요. 저도 어디 가면 쉽게 종이컵이나 비닐팩 같은 걸 쓰기도 하니까요.

수빈: 그게 참 쉽지 않죠.

김현숙 농부님: 그런데 이분들은 너무 신기한 거예요. 다 늘어진 파나 고개 숙인 채소들을 가방에 넣어 메고 가시잖아요. 물론 집에 가서 물에 담가두면 다 살아나는데, 대부분 그런 모습을 못 참거든요.

수빈: 맞아요, 그런 맥락을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이해하고 공유하는 시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네요.

김현숙 농부님: 저도 반성하게 되고 스스로 도전하게 돼요. '나도 가능하면 일회용품 사용을 더 줄여보자' 하고요. 쉽게 쓸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고 또 여기저기서 제공되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반성하게 되었죠. 참 고마워요. 나는 말로만 농사지으며 지구를 지키는 척하지만, 실제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들은 바로 저분들이구나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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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a012bf94187.jpg사진 : 김현숙 농부님이 가져온 루꼴라 모종과(위) 캐모마일 순을 들여다 보는 퇴근후마르쉐 참여자의 모습(아래)


농사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수빈: 저는 사실 시민으로서 농부님의 어려움도 알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오늘 작물 소개해 주실 때도 어려움을 얘기해 주셨는데, 이런 게 당연하지 않다는 걸 시민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궁금했어요.

김현숙 농부님: 제가 지금까지 엄마랑 같이 일을 했고, 또 엄마의 동료 어르신들과 함께 일을 해왔거든요. 저는 마을에 들어갈 때 마을 분들과 친해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할머니들과 친한 편이에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그분들이 안 계시니까 정말 큰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럴 때 참 어렵고, 특히 이제 엄마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마음이 무겁죠.

또 양평에 빈 밭이 많아서 농사를 짓고 있고 모든 사람이 저를 농부로 인정하지만, 실제 법적으로는 농부가 아니거든요. 이런 신분의 불안정함이 전에는 별로 문제가 아니었는데, 작년에는 날씨도 너무 안 좋았고, 가을에는 계속 비가 와서 제가 잘하는 것들마저 엉망진창이 됐어요. 콩도 얼마 전에야 털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저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농조합이나 물류 쪽에서 대규모로 농사를 짓던 친구들도 몇 년 동안 안식년을 가지며 직장 생활을 하겠다고 떠나는 경우가 많이 생겼어요.

수빈: 아이고 그랬군요.

김현숙 농부님: 최근에 그런 소식을 들려준 친구가 벌써 두 명이에요. 농사 잘 짓는, 5천 평에서 고구마 농사 크게 짓던 농부가 있었는데 건축 현장 소장으로 갔어요. 아이들을 길러야 하니 돈이 더 필요하다고요. 돈이 더 필요해서 농사를 그만두는 쪽으로 자꾸 몰두하게 되니까, 그때마다 제 마음이 참 힘든 거예요. 저도 어려운데 말이죠.

수빈: 마음이 엄청 복잡할 것 같아요 농부님. 제도적으로나 사회 경제적으로나 사각지대에 있는 존재로서, 농부의 생계와 농업을 지켜나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고 저도 느꼈고 참 막막하더라고요. '농부의 숲' 프로젝트도 농부의 땅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됐다고 들었는데, 정말 필요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고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12년 넘게 농사를 지어오셨는데, 앞으로도 이것만은 꼭 지켜가고 싶다 하는 농부님만의 가치관이 있으실까요?

김현숙 농부님: 농사를 하면서 적어도 지구를 덜 훼손하자는 생각을 해요. 지금까지 저는 기성세대로서 지구를 망가뜨리는 데 일조하며 살았다는 반성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농사는, 다른 걸 과하게 탐하지 않고 농사만 짓는다면 진짜 친환경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에요. 지구를 당장 더 좋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덜 망가뜨리는 방법으로 살 수 있겠다 싶어서 하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이런 농사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를 사람들에게 자꾸 보여주고 싶어요.

수빈: 농사는 재미있고 좋다! 농부님이 이 업을 대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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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f60d7cd08be.jpg사진 : 2024년 퇴근후마르쉐 봄 농가행에서 촬영한 봉금의 뜰 텃밭. 김현숙 농부님께서 참여자에게 밭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숙 농부님: 그래서 저는 누구라도 밭으로 오겠다는 걸 제일 좋아해요. 제가 오늘처럼 외부로 나온 건 드문 일이에요. 귀농 학교 같은 데서 경험을 나눠달라는 요청도 많이 하시지만, 저는 늘 밭으로 오시라고 말씀드려요. 마을 정원 가꾸기 같은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도 밭으로 오는 건 다 환영하지만, 제가 밖으로 나가는 건 지양하는 편이에요. 아무리 말을 잘하고 PPT를 근사하게 만들어도 직접 밭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이 밭으로 오게 해서 세상과 연결해주고 싶어요.

수빈: 흙도 직접 만지고 말이죠!

김현숙 농부님: 네, 그리고 직접 심어보고 싶게 만들고 싶어요. 제가 얻은 땅이지만 팀화요 분들에게도 다 밭을 나누어 드렸어요. 그냥 단순히 저를 도와주는 건 다른 거라고, 직접 길러봐야 한다고 했죠. 그래서 다들 10평, 20평씩 자기 밭을 갖고 계세요. 팀화요 분들이 저를 단순히 도와주기만 했다면 아마 인연이 길게 가지 않았을 거예요. 본인들이 경작하면서 평화를 느끼고, 또 자기가 먹는 채소들을 직접 길러보면 농부나 농산물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달라지거든요. 

수빈: 저도 작년에 홍성에서 배추 모종을 심어봤는데요. 잠깐 했는데도 계속 같은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까 허리가 뻐끈하고 쑤시더라고요. 들었을 땐 간단해 보이는 일 중 하나였는데도 이게 참 쉽지 않구나 느꼈어요. 무엇이든 과정을 알아야 먹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기른 사람의 노고도 생각하게 되고요.

김현숙 농부님: 그렇죠. 그래서 마르쉐 소비자분들의 피드백이 진짜 큰 힘이 돼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농부가 다 그럴 거예요. "오늘 장 봐왔다", "이건 누구 농부님의 작물이다" 하며 태그 걸어주시는 것들이 정말 특별해요. 하다못해 루꼴라 정도만 직접 길러봐도, 얘가 자라는 게 제가 정성을 들이는 만큼 정직하게 반응하거든요. 정말 정직한 일이죠.

수빈: 맞아요. 그래서 이런 기쁨을 아는 분들이 얼른 많아지길 바라요. 오늘 시간 내어 대화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농부님!

김현숙 농부님: 아유,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수빈: 배고프실 텐데 얼른 식사하시죠 농부님!

김현숙 농부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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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농부님이 가져온 채소로 참여자들이 함께 만든 음식들. 봄나물믹스 숏파스타와 양배추 샐러드, 청서리태 후무스를 만들었다.


대담을 마치고 농부님과 함께 앉은 식탁에는 봄 한상이 가득했습니다. 봄나물 숏파스타와 청서리태로 만든 후무스,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까지. 심은리 셰프님과 퇴근후마르쉐 식구 분들이 함께 만든 메뉴들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풍성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상의 모든 채소를 만나는 것이 꿈"이라 말하는 김현숙 농부님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다시 한번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그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손길을 거쳐 우리 앞에 놓였는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을 잇고 싶은 것이 벗밭과 마르쉐의 마음 같습니다.

퇴근 후 마르쉐에서는 농부님을 초대하여, 마음이 담긴 꾸러미와 밭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요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부님과의 만남은 참가자들에게 재료가 길러진 과정을 보다 가까이 느끼게 했고, 자연스럽게 밭을 떠올리고 가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짧은 만남 속에서도 마음이 움직이는 경험은, 우리 안에 이미 생명을 향한 감각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벗밭과 마르쉐가 함께 만들어가는 ‘퇴근 후 마르쉐’ 프로그램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자기 안의 밭을 발견하고, 먹거리 안에서 농부와 밭을 떠올리는 경험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수빈 (벗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