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숲 첫 번째 필드트립 – 강촌 로즈랑스
5월의 농부의숲 첫 번째 필드트립은 강원도 춘천의 강촌 로즈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농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짙은 장미 향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익숙한 꽃이지만, 이날만큼은 장미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장미를 식물로, 먹거리로,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농업 문화로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강촌로즈랑스는 30여 년 동안 장미를 재배해 온 농장입니다. 농장을 안내해주신 유명림 선생님과 최주순 농부님은 식용장미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새로운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식물을 바라보는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장미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
이날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신 유명림 선생님은 꽃을 단순히 아름다운 관상식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함께해 온 식물로 소개했습니다.
우리에게 쑥이나 구절초가 오래전부터 몸을 돌보는 식물이었다면, 유럽에서는 장미가 그런 역할을 해왔습니다. 꽃잎을 상처에 붙이고, 차를 마시고, 향을 즐기며 몸과 마음을 돌보는 문화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장미는 언제부턴가 '눈으로만 보는 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식용장미를 이야기하면서도 장미의 효능을 먼저 말하기보다 "우리는 식물을 얼마나 알고 먹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먹거리가 넘치는 시대이지만 정작 먹는 재료의 향과 맛, 계절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삶. 생산성과 효율을 우선하는 농업 속에서 생태와 건강, 그리고 감각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장미를 넘어 지금의 먹거리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꽃 한 송이 뒤에 있는 농사의 시간
이어 농장을 안내한 최주순 농부님의 이야기는 장미를 키우는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강촌로즈랑스에는 300종이 넘는 장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미가 식용으로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차로 마셨을 때 향이 좋은지, 생으로 먹었을 때 식감은 어떤지, 청을 담갔을 때 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우러나는지. 수많은 품종을 직접 재배하고 맛보고 비교한 끝에 비로소 식용장미로 선택됩니다.
절화용 장미가 화병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면, 식용장미는 향과 맛, 가공성이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절화 시장에서는 실패한 품종이 식용장미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품종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같은 장미라도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농장을 걸으며 접목묘와 삽목, 장미의 휴면기, 경제수령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겨울 동안 충분히 쉬게 한 장미는 10년 이상 건강하게 자라지만, 겨울에도 계속 꽃을 생산하는 절화용 장미는 훨씬 빨리 노화된다고 합니다. 꽃을 오래 피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할 때 충분히 쉬게 하는 것이 식물에게도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농사 짓는다는 것
농장을 걷는 동안 가장 자주 등장한 이야기는 날씨였습니다. 비가 오는 시기와 밤 기온이 조금만 달라져도 병해충의 발생 양상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농사의 방식도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해충이 예년보다 훨씬 일찍 나타나면서, 친환경 농업은 더욱 세심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해졌다고 합니다.
멀칭 재료를 고르는 일, 환기창을 자동으로 여닫는 시설을 설치하는 일, 품종을 다시 선택하는 일까지. 농부의 일상은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농사는 자연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읽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을 나서며
농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장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래 이야기한 것은 장미보다도 농부였습니다.
300종이 넘는 장미를 하나씩 맛보고, 향을 맡고, 차를 우려 보며 식용으로 적합한 품종을 찾아가는 시간. 절화로는 선택받지 못한 품종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 한 송이 꽃보다 그 뒤에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다려 온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농부의 숲도 이제 막 시작입니다. 어떤 식물이 우리에게 잘 맞을지, 무엇을 오래 남겨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촌로즈랑스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보다, 오래 관찰하고 천천히 선택하는 농부의 태도를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농장을 떠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농부의숲을 걸으며 "이 나무는 왜 여기 심었을까?", "이 식물은 어떻게 우리 곁에 남게 되었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먹거리숲도 처음에는 작은 식물 몇 그루에서 시작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쌓인 경험도 자라날 것입니다. 이번 필드트립은 장미를 배우러 간 하루라기보다, 시간이 쌓인 농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경험한 하루였습니다.

농부의숲 첫 번째 필드트립 – 강촌 로즈랑스
5월의 농부의숲 첫 번째 필드트립은 강원도 춘천의 강촌 로즈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농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짙은 장미 향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익숙한 꽃이지만, 이날만큼은 장미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장미를 식물로, 먹거리로,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져 온 농업 문화로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강촌로즈랑스는 30여 년 동안 장미를 재배해 온 농장입니다. 농장을 안내해주신 유명림 선생님과 최주순 농부님은 식용장미를 키우는 일은 단순히 새로운 작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식물을 바라보는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장미를 다시 바라보는 시선
이날 이야기를 주로 들려주신 유명림 선생님은 꽃을 단순히 아름다운 관상식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함께해 온 식물로 소개했습니다.
우리에게 쑥이나 구절초가 오래전부터 몸을 돌보는 식물이었다면, 유럽에서는 장미가 그런 역할을 해왔습니다. 꽃잎을 상처에 붙이고, 차를 마시고, 향을 즐기며 몸과 마음을 돌보는 문화가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장미는 언제부턴가 '눈으로만 보는 꽃'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식용장미를 이야기하면서도 장미의 효능을 먼저 말하기보다 "우리는 식물을 얼마나 알고 먹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먹거리가 넘치는 시대이지만 정작 먹는 재료의 향과 맛, 계절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삶. 생산성과 효율을 우선하는 농업 속에서 생태와 건강, 그리고 감각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장미를 넘어 지금의 먹거리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꽃 한 송이 뒤에 있는 농사의 시간
이어 농장을 안내한 최주순 농부님의 이야기는 장미를 키우는 현실로 이어졌습니다.
강촌로즈랑스에는 300종이 넘는 장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장미가 식용으로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차로 마셨을 때 향이 좋은지, 생으로 먹었을 때 식감은 어떤지, 청을 담갔을 때 색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우러나는지. 수많은 품종을 직접 재배하고 맛보고 비교한 끝에 비로소 식용장미로 선택됩니다.
절화용 장미가 화병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면, 식용장미는 향과 맛, 가공성이라는 전혀 다른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절화 시장에서는 실패한 품종이 식용장미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품종이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같은 장미라도 목적에 따라 전혀 다른 가능성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농장을 걸으며 접목묘와 삽목, 장미의 휴면기, 경제수령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겨울 동안 충분히 쉬게 한 장미는 10년 이상 건강하게 자라지만, 겨울에도 계속 꽃을 생산하는 절화용 장미는 훨씬 빨리 노화된다고 합니다. 꽃을 오래 피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할 때 충분히 쉬게 하는 것이 식물에게도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농사 짓는다는 것
농장을 걷는 동안 가장 자주 등장한 이야기는 날씨였습니다. 비가 오는 시기와 밤 기온이 조금만 달라져도 병해충의 발생 양상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농사의 방식도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후 변화로 해충이 예년보다 훨씬 일찍 나타나면서, 친환경 농업은 더욱 세심한 관찰과 대응이 필요해졌다고 합니다.
멀칭 재료를 고르는 일, 환기창을 자동으로 여닫는 시설을 설치하는 일, 품종을 다시 선택하는 일까지. 농부의 일상은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농사는 자연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읽고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농장을 나서며
농장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 장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오래 이야기한 것은 장미보다도 농부였습니다.
300종이 넘는 장미를 하나씩 맛보고, 향을 맡고, 차를 우려 보며 식용으로 적합한 품종을 찾아가는 시간. 절화로는 선택받지 못한 품종에서도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선. 한 송이 꽃보다 그 뒤에서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다려 온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농부의 숲도 이제 막 시작입니다. 어떤 식물이 우리에게 잘 맞을지, 무엇을 오래 남겨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강촌로즈랑스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보다, 오래 관찰하고 천천히 선택하는 농부의 태도를 보여준 것 같았습니다.
농장을 떠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농부의숲을 걸으며 "이 나무는 왜 여기 심었을까?", "이 식물은 어떻게 우리 곁에 남게 되었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먹거리숲도 처음에는 작은 식물 몇 그루에서 시작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식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곁에서 함께 쌓인 경험도 자라날 것입니다. 이번 필드트립은 장미를 배우러 간 하루라기보다, 시간이 쌓인 농장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경험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