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푸른 계절, 하지를 앞둔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 속에서 농부의 숲 공부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 공부모임에는 일본 후지산 아래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식물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허브스탠드(HERBSTAND)의 히라노 유타 씨와 통역을 맡은 스기하라 유타 씨가 함께했습니다. 1부는 온라인과 현장을 연결한 강연으로, 2부는 현장 워크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농부의 숲은 기후위기 시대에 땅을 회복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숲을 가꾸고 다년생 식물을 키우며 농업과 생태계를 함께 회복하고 재생하는 일은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농부와 작업자들은 공부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질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_ 히라노 유타 · HERBSTAND (사진 속 오른쪽)
히라노 유타는 2018년 파트너 마나미와 함께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에 'HERBSTAND'를 설립했다. 후지산 북쪽 기슭 해발 800m에 위치한 농장에서 허브를 직접 재배하고, 차와 가공품을 생산한다. 뉴질랜드·호주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내 허브 문화 보급을 목표로 활동해왔으며, 현재는 밭과 숲에서 자생하는 식물까지 허브로 재발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농부, 셰프,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식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쓸모없다고 여겨진 식물에도 가치가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_ 스기하라 유타 · 통역 · 로컬 크리에이터 (사진 속 왼쪽)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의 마을의 로컬크리에이터·디자이너·기획자.
빈 점포와 빈 집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 특산물인 패브릭(섬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거리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후지텍스타일위크의 부실행위원장을 맡는 등 발 넓은 활동을 펼쳤다. 지금도 마을과 크리에이터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허브만 허브인 것은 아니다
허브스탠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즈마리나 라벤더 같은 허브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히라노 씨는 허브를 “사람에게 유용한 모든 식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시선으로 보면 길가의 잡초도, 숲속의 야생식물도, 도시 옥상에서 자라는 식물도 모두 허브가 됩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며 허브를 특별한 식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집 앞 정원에서 식물을 뜯어 차를 만들고, 몸 상태에 따라 식물을 고르고,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허브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일본으로 돌아와 허브스탠드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허브스탠드가 하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만이 아닙니다. 고령화로 방치된 농지를 빌려 허브를 재배(20%)하고, 숲을 관리하며 식물 채집(40%) 및 전국 생산자들과 협력해 생산자 네트워크 운영(40%)힙니다. 동시에 농업과 임업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을 살펴봅니다.
동시에 농업과 임업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에 주목합니다. 딸기 줄기는 발효를 통해 바닐라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끌어내고, 임업 과정에서 나온 가지는 훈연 재료로, 죽순 껍질은 육수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합니다. 보통은 버려지는 자원이지만 허브스탠드는 그 안에 남아 있는 향과 맛, 그리고 새로운 쓰임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발효와 건조, 로스팅 등 여러 방법을 시험하며 식물 하나가 가진 특성을 끝까지 들여다봅니다. 히라노 씨는 커피와 차, 와인이 각각 하나의 문화가 되었듯 식물 하나하나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지우고 마주하기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브스탠드가 진행하는 Botanical Tasting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식물의 이름을 모른 채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누군가는 초콜릿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리치 향이나 감귤을 떠올립니다. 식물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면 우리가 가진 이미지가 맛을 먼저 규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름 없이 마주한 식물은 예상하지 못한 향과 맛으로 다가옵니다. 그 시간은 식물을 재료가 아닌 하나의 개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허브스탠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식물의 향과 맛을 기록하는 Flavor Map을 만들고 있습니다. 식물마다 어떤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공 방식을 거쳤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정리하며 사람들이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식물도 저마다 다르다
처음에 히라노씨는 산에서 자란 야생 식물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물을 연구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도시의 식물은 콘크리트 틈, 옥상, 마당 등 다양한 환경에서 더운 온도, 제한된 토양, 다양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 남으며 독특한 향과 성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를 따지기보다 각 식물이 지나온 환경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허브스탠드가 진행하는 식물 투어에서도 드러납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산과 도시의 식물을 비교하며 관찰하는데, 같은 쑥이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후지산 주변보다 도시에서 자란 식물이 더 강한 풍미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히라노 씨는 이를 통해 식물이 자란 장소와 환경 역시 맛의 중요한 일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후가 바뀌면 농사도 바뀐다
포도 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기존에 재배하던 작물이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농부들은 계속 새로운 작물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히라노 씨는 하나의 작물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식물을 이해하고 지역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소규모 생산자들이 생산 시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적응해가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허브스탠드는 전국 생산자 네트워크를 통해 같은 식물도 지역과 고도에 따라 수확 시기를 달리하며 공급하고 있습니다. 기후가 달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생산의 공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부들이 서로 다른 지역의 작물을 경험하고 맛볼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같은 작물이어도 자란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고, 그런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히라노 씨는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은 혼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역 생태계를 표현하는 일
이러한 활동은 히라노 씨 혼자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허브스탠드는 현재 정규직 5명과 인턴 2명, 그리고 전국의 생산자 네트워크와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재배와 채집, 블렌딩, 가공 등 각자의 강점을 가진 구성원들이 협력하며,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분야를 책임지는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허브스탠드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지역 생태계를 표현하는 허브"입니다. 와인에 떼루아가 있듯, 허브 역시 자란 장소의 기후와 토양, 주변 생태계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허브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의 특성을 담은 허브티를 만들고, 요리사의 스타일에 맞춰 허브가든을 설계하거나, 셰프와 함께 식물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식물과 놀듯이 살아가기
강연 후에는 "농부이면서 기획자이자 연결자로 살아가는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히라노 씨는 어린 시절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도시의 길도 그냥 길이었고 계단도 그냥 계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하니까 '여기서도 탈 수 있겠다', '저기서도 탈 수 있겠다' 하면서 도시 전체가 제 놀이터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식물들이었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활 자체가 풍부해졌습니다. 그래서 기획을 해야 한다,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식물과 놀듯이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잡초 하나만 있어도 하루 종일 그 식물과 놀 수 있습니다.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따라간 결과였을 뿐입니다. 농부들도 지금까지 해오던 것만 하기보다, 때로는 마이너리티가 될지라도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계속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밭에서 다시 만난 식물들
강의를 마친 뒤에는 고향찬우물농장 한켠에 자리한 '썸띵인그린'에서 현장 워크숍이 이어졌습니다.
썸띵인그린은 허브와 다양한 채소, 정원용 꽃을 키우며 농부이자 가드너로 활동하는 김현명 농부가 14년 동안 가꿔온 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통해 위로받고 텃밭을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밭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식물 앞에 멈춰 설 때마다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김현명 농부가 자신의 밭을 소개하면, 히라노 씨는 허브스탠드에서의 경험을 덧붙였습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왕보리수나무 앞에서 김현명 농부는 빨갛게 익은 열매를 권했습니다. 그러자 히라노 씨는 오히려 초록빛의 덜 익은 열매를 가리켰습니다. 허브스탠드에서는 이 미숙과를 케이퍼처럼 절이거나 장아찌로 만들고, 발효시켜 음료로도 활용한다고 합니다. 빨갛게 익은 열매만 떠올렸던 보리수에 또 다른 쓰임이 있다는 것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 엘더베리 앞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봉오리는 시럽으로 만들고, 조금 더 피면 꽃향을 즐깁니다. 열매는 생으로 먹지 않고 소스로 만들고, 어린 새순은 튀김으로도 먹는다고 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마다 쓰임도 조금씩 달라진다고 합니다.
찬우물농장 곳곳으로 퍼져 자라고 있는 캐모마일 앞에서는 김현명 농부가 14년 전 세 포트로 시작한 캐모마일이 이제는 농장 곳곳에서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농장의 풍경을 만드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캐모마일은 꽃을 하나하나 따야 하는 작물입니다. 히라노 씨는 허브스탠드에서는 꽃을 쉽게 수확하기 위해 직접 만든 도구를 사용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꽃뿐 아니라 잎도 샐러드용으로 출하한다고 하자, 김현명 농부는 "우리는 그냥 꽃째로 잘라 시장에 가져간다"고 말해 모두 웃음이 터졌습니다.

유난히 향이 좋던 딜 앞에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김현명 농부는 일부러 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씨를 퍼뜨려 자라는 딜이 있다며, 직접 씨를 받아 뿌린 것보다 자연발아한 딜이 더 튼튼하게 자란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히라노 씨는 일본에서는 말린 딜 씨앗은 흔하지만 신선한 딜 씨앗은 쉽게 만날 수 없다며, 허브스탠드에서는 꽃이 피고 씨앗이 맺힌 딜을 그대로 식당에 공급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민트 앞에서는 향과 쓰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김현명 농부는 이 품종이 한국에서는 페퍼민트로 유통되고 있으며, 모히토를 만들 때는 애플민트보다 이 페퍼민트를 추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모양 때문에 애플민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이 페퍼민트가 향과 즙이 더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히라노 씨는 이 민트가 쿠바에서 모히토에 사용하는 허브인 예르바부에나(Yerba Buena)와 매우 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페퍼민트와 모로코 계열 민트는 주성분이 달라, 같은 민트라도 품종에 따라 향과 개성이 다르고 그에 맞는 쓰임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김현명 농부는 농장에서 14년 동안 키운 민트는 처음 들여왔을 때와 비교해 잎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고, 민트는 교잡과 재배 환경에 따라 형태와 향이 변하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시소 앞에서는 붉은 시소(적차조기)를 말려 만든 후리카케인 일본의 '유카리(Yukari) '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보통은 크게 자란 잎과 줄기를 함께 사용하지만, 허브스탠드에서는 가장 어린 새순만 골라 말린다고 합니다. 히라노 씨는 차에도 햇차가 있듯이 식물도 가장 어린 새순에서 맑은 향을 느낄 수 있다며, 그 향을 담고 싶어 새순만 사용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병풀 앞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상처 연고의 원료로 잘 알려져 있지만, 허브스탠드에서는 봄에 수확한 어린 잎으로 제노베제를 만들거나 파스타 반죽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생잎을 식재료로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베르가모트 앞에서는 허브의 쓴맛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히라노 씨는 감자를 볶을 때나 차를 만들 때 조금 더하면 쓴맛과 향이 새로운 풍미를 만든다고 소개했습니다. 평소에는 피하게 되는 쓴맛도 요리에서는 또 다른 맛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파슬리 앞에서는 참가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잎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히라노 씨는 꽃을 가리키며 "파슬리는 꽃이 더 맛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2년 차가 되어 꽃을 피운 파슬리는 잎과는 또 다른 향을 품고 있었고, 참가자들은 하나씩 맛보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워크숍을 마치고 나오는 길, 찬우물농장의 포도넝굴 앞에서도 히라노 씨는 다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포도나무의 어린 잎을 발효해 차로 만들 수 있고, 포도는 품종마다 열매뿐 아니라 잎의 맛도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밭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열매와 꽃, 잎과 씨앗 앞에서 발걸음이 여러 번 멈췄습니다.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밭에서 하나씩 이어졌고, 평소 지나치던 식물에도 새로운 쓰임이 있다는 것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열매만 바라보던 시선이 초록빛 열매로 향하고, 잎만 보던 손길이 꽃과 씨앗, 새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식물을 바라보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이날의 공부모임도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식물 문화도 이렇게 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 속에서 강의와 현장 워크숍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신 고향찬우물농장의 이상린 농부님과 농장 식구들, 환대의 식탁을 준비해 주신 마하키친, 라크소다, 프란로칼, 카리테, 꼭시넬, 베지스의 요리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6월의 푸른 계절, 하지를 앞둔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 속에서 농부의 숲 공부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번 공부모임에는 일본 후지산 아래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식물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허브스탠드(HERBSTAND)의 히라노 유타 씨와 통역을 맡은 스기하라 유타 씨가 함께했습니다. 1부는 온라인과 현장을 연결한 강연으로, 2부는 현장 워크숍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농부의 숲은 기후위기 시대에 땅을 회복하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숲을 가꾸고 다년생 식물을 키우며 농업과 생태계를 함께 회복하고 재생하는 일은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농부와 작업자들은 공부모임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질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_ 히라노 유타 · HERBSTAND (사진 속 오른쪽)
히라노 유타는 2018년 파트너 마나미와 함께 일본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에 'HERBSTAND'를 설립했다. 후지산 북쪽 기슭 해발 800m에 위치한 농장에서 허브를 직접 재배하고, 차와 가공품을 생산한다. 뉴질랜드·호주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 내 허브 문화 보급을 목표로 활동해왔으며, 현재는 밭과 숲에서 자생하는 식물까지 허브로 재발견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 농부, 셰프,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식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며, “쓸모없다고 여겨진 식물에도 가치가 있다“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_ 스기하라 유타 · 통역 · 로컬 크리에이터 (사진 속 왼쪽)
야마나시현 후지요시다시의 마을의 로컬크리에이터·디자이너·기획자.
빈 점포와 빈 집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역 특산물인 패브릭(섬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거리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후지텍스타일위크의 부실행위원장을 맡는 등 발 넓은 활동을 펼쳤다. 지금도 마을과 크리에이터들을 연결하는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허브만 허브인 것은 아니다
허브스탠드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로즈마리나 라벤더 같은 허브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히라노 씨는 허브를 “사람에게 유용한 모든 식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시선으로 보면 길가의 잡초도, 숲속의 야생식물도, 도시 옥상에서 자라는 식물도 모두 허브가 됩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생활하며 허브를 특별한 식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집 앞 정원에서 식물을 뜯어 차를 만들고, 몸 상태에 따라 식물을 고르고, 식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허브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경험이 일본으로 돌아와 허브스탠드를 시작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들여다보다
허브스탠드가 하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만이 아닙니다. 고령화로 방치된 농지를 빌려 허브를 재배(20%)하고, 숲을 관리하며 식물 채집(40%) 및 전국 생산자들과 협력해 생산자 네트워크 운영(40%)힙니다. 동시에 농업과 임업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을 살펴봅니다.
동시에 농업과 임업 과정에서 남겨지는 것들에 주목합니다. 딸기 줄기는 발효를 통해 바닐라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끌어내고, 임업 과정에서 나온 가지는 훈연 재료로, 죽순 껍질은 육수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합니다. 보통은 버려지는 자원이지만 허브스탠드는 그 안에 남아 있는 향과 맛, 그리고 새로운 쓰임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발효와 건조, 로스팅 등 여러 방법을 시험하며 식물 하나가 가진 특성을 끝까지 들여다봅니다. 히라노 씨는 커피와 차, 와인이 각각 하나의 문화가 되었듯 식물 하나하나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의 이름을 지우고 마주하기
인상적이었던 것은 허브스탠드가 진행하는 Botanical Tasting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식물의 이름을 모른 채 향을 맡고 맛을 보며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누군가는 초콜릿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리치 향이나 감귤을 떠올립니다. 식물의 이름을 먼저 알게 되면 우리가 가진 이미지가 맛을 먼저 규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름 없이 마주한 식물은 예상하지 못한 향과 맛으로 다가옵니다. 그 시간은 식물을 재료가 아닌 하나의 개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허브스탠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식물의 향과 맛을 기록하는 Flavor Map을 만들고 있습니다. 식물마다 어떤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가공 방식을 거쳤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정리하며 사람들이 식물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식물도 저마다 다르다
처음에 히라노씨는 산에서 자란 야생 식물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물을 연구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도시의 식물은 콘크리트 틈, 옥상, 마당 등 다양한 환경에서 더운 온도, 제한된 토양, 다양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 남으며 독특한 향과 성분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우수한가를 따지기보다 각 식물이 지나온 환경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허브스탠드가 진행하는 식물 투어에서도 드러납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산과 도시의 식물을 비교하며 관찰하는데, 같은 쑥이라도 자란 환경에 따라 향과 맛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후지산 주변보다 도시에서 자란 식물이 더 강한 풍미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히라노 씨는 이를 통해 식물이 자란 장소와 환경 역시 맛의 중요한 일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후가 바뀌면 농사도 바뀐다
포도 산지가 북쪽으로 이동하고, 기존에 재배하던 작물이 더 이상 적응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농부들은 계속 새로운 작물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히라노 씨는 하나의 작물만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식물을 이해하고 지역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소규모 생산자들이 생산 시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적응해가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허브스탠드는 전국 생산자 네트워크를 통해 같은 식물도 지역과 고도에 따라 수확 시기를 달리하며 공급하고 있습니다. 기후가 달라도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생산의 공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부들이 서로 다른 지역의 작물을 경험하고 맛볼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같은 작물이어도 자란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고, 그런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히라노 씨는 기후위기 시대의 농업은 혼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역 생태계를 표현하는 일
이러한 활동은 히라노 씨 혼자만의 작업이 아닙니다. 허브스탠드는 현재 정규직 5명과 인턴 2명, 그리고 전국의 생산자 네트워크와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재배와 채집, 블렌딩, 가공 등 각자의 강점을 가진 구성원들이 협력하며,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분야를 책임지는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허브스탠드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지역 생태계를 표현하는 허브"입니다. 와인에 떼루아가 있듯, 허브 역시 자란 장소의 기후와 토양, 주변 생태계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허브를 재배하고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지역의 특성을 담은 허브티를 만들고, 요리사의 스타일에 맞춰 허브가든을 설계하거나, 셰프와 함께 식물이 가진 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식물과 놀듯이 살아가기
강연 후에는 "농부이면서 기획자이자 연결자로 살아가는 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히라노 씨는 어린 시절 스케이트보드를 배웠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스케이트보드를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스케이트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도시의 길도 그냥 길이었고 계단도 그냥 계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시작하니까 '여기서도 탈 수 있겠다', '저기서도 탈 수 있겠다' 하면서 도시 전체가 제 놀이터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에는 그냥 지나치던 식물들이었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하나하나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생활 자체가 풍부해졌습니다. 그래서 기획을 해야 한다, 편집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식물과 놀듯이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또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잡초 하나만 있어도 하루 종일 그 식물과 놀 수 있습니다. 마이너리티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런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들을 따라간 결과였을 뿐입니다. 농부들도 지금까지 해오던 것만 하기보다, 때로는 마이너리티가 될지라도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계속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밭에서 다시 만난 식물들
강의를 마친 뒤에는 고향찬우물농장 한켠에 자리한 '썸띵인그린'에서 현장 워크숍이 이어졌습니다.
썸띵인그린은 허브와 다양한 채소, 정원용 꽃을 키우며 농부이자 가드너로 활동하는 김현명 농부가 14년 동안 가꿔온 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통해 위로받고 텃밭을 가까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밭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식물 앞에 멈춰 설 때마다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김현명 농부가 자신의 밭을 소개하면, 히라노 씨는 허브스탠드에서의 경험을 덧붙였습니다.
질소를 고정하는 왕보리수나무 앞에서 김현명 농부는 빨갛게 익은 열매를 권했습니다. 그러자 히라노 씨는 오히려 초록빛의 덜 익은 열매를 가리켰습니다. 허브스탠드에서는 이 미숙과를 케이퍼처럼 절이거나 장아찌로 만들고, 발효시켜 음료로도 활용한다고 합니다. 빨갛게 익은 열매만 떠올렸던 보리수에 또 다른 쓰임이 있다는 것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옆 엘더베리 앞에서도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봉오리는 시럽으로 만들고, 조금 더 피면 꽃향을 즐깁니다. 열매는 생으로 먹지 않고 소스로 만들고, 어린 새순은 튀김으로도 먹는다고 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마다 쓰임도 조금씩 달라진다고 합니다.
찬우물농장 곳곳으로 퍼져 자라고 있는 캐모마일 앞에서는 김현명 농부가 14년 전 세 포트로 시작한 캐모마일이 이제는 농장 곳곳에서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중요한 소득원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농장의 풍경을 만드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캐모마일은 꽃을 하나하나 따야 하는 작물입니다. 히라노 씨는 허브스탠드에서는 꽃을 쉽게 수확하기 위해 직접 만든 도구를 사용한다고 소개했습니다. 꽃뿐 아니라 잎도 샐러드용으로 출하한다고 하자, 김현명 농부는 "우리는 그냥 꽃째로 잘라 시장에 가져간다"고 말해 모두 웃음이 터졌습니다.
유난히 향이 좋던 딜 앞에서도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졌습니다. 김현명 농부는 일부러 심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씨를 퍼뜨려 자라는 딜이 있다며, 직접 씨를 받아 뿌린 것보다 자연발아한 딜이 더 튼튼하게 자란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히라노 씨는 일본에서는 말린 딜 씨앗은 흔하지만 신선한 딜 씨앗은 쉽게 만날 수 없다며, 허브스탠드에서는 꽃이 피고 씨앗이 맺힌 딜을 그대로 식당에 공급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민트 앞에서는 향과 쓰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김현명 농부는 이 품종이 한국에서는 페퍼민트로 유통되고 있으며, 모히토를 만들 때는 애플민트보다 이 페퍼민트를 추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모양 때문에 애플민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이 페퍼민트가 향과 즙이 더 풍부하다는 것입니다. 히라노 씨는 이 민트가 쿠바에서 모히토에 사용하는 허브인 예르바부에나(Yerba Buena)와 매우 가깝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페퍼민트와 모로코 계열 민트는 주성분이 달라, 같은 민트라도 품종에 따라 향과 개성이 다르고 그에 맞는 쓰임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김현명 농부는 농장에서 14년 동안 키운 민트는 처음 들여왔을 때와 비교해 잎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고, 민트는 교잡과 재배 환경에 따라 형태와 향이 변하기도 한다고 전했습니다.
시소 앞에서는 붉은 시소(적차조기)를 말려 만든 후리카케인 일본의 '유카리(Yukari) '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보통은 크게 자란 잎과 줄기를 함께 사용하지만, 허브스탠드에서는 가장 어린 새순만 골라 말린다고 합니다. 히라노 씨는 차에도 햇차가 있듯이 식물도 가장 어린 새순에서 맑은 향을 느낄 수 있다며, 그 향을 담고 싶어 새순만 사용한다고 소개했습니다.
병풀 앞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는 상처 연고의 원료로 잘 알려져 있지만, 허브스탠드에서는 봄에 수확한 어린 잎으로 제노베제를 만들거나 파스타 반죽에 활용한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생잎을 식재료로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베르가모트 앞에서는 허브의 쓴맛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히라노 씨는 감자를 볶을 때나 차를 만들 때 조금 더하면 쓴맛과 향이 새로운 풍미를 만든다고 소개했습니다. 평소에는 피하게 되는 쓴맛도 요리에서는 또 다른 맛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파슬리 앞에서는 참가자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잎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히라노 씨는 꽃을 가리키며 "파슬리는 꽃이 더 맛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2년 차가 되어 꽃을 피운 파슬리는 잎과는 또 다른 향을 품고 있었고, 참가자들은 하나씩 맛보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워크숍을 마치고 나오는 길, 찬우물농장의 포도넝굴 앞에서도 히라노 씨는 다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포도나무의 어린 잎을 발효해 차로 만들 수 있고, 포도는 품종마다 열매뿐 아니라 잎의 맛도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밭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열매와 꽃, 잎과 씨앗 앞에서 발걸음이 여러 번 멈췄습니다. 강의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밭에서 하나씩 이어졌고, 평소 지나치던 식물에도 새로운 쓰임이 있다는 것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열매만 바라보던 시선이 초록빛 열매로 향하고, 잎만 보던 손길이 꽃과 씨앗, 새순으로 이어졌습니다. 식물을 바라보는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이날의 공부모임도 마무리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식물 문화도 이렇게 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초여름 풍경 속에서 강의와 현장 워크숍이 이어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신 고향찬우물농장의 이상린 농부님과 농장 식구들, 환대의 식탁을 준비해 주신 마하키친, 라크소다, 프란로칼, 카리테, 꼭시넬, 베지스의 요리사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