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보슬비로 바뀌었습니다. 초록 잎마다 맺힌 물방울이 싱그럽게 빛나던 날, 마르쉐친구들과 출점팀은 충남 논산 꽃비원으로 향했습니다. 14년 동안 꽃비원을 일궈온 정광하 농부님으로부터 먹거리숲에 관한 귀한 경험을 나눔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가까이 전북 완주 너멍굴농장 진남현 농부님, 서북쪽 강화도 반팜의 반윤욱 농부님, 파주 섬띵인그린의 김현명 농부님, 강원도 먹거리 숲을 가꾸는 보라시골 가족들, 목장에서 우유를 생산하며 유가공품 카페를 운영하는 효덕목장, 경남 진주에서 먹거리숲을 가꾸고 있는 해든농장의 정해든 농부님 모녀, 잔라남도 순천의 구목마을곰씨네 이태영 농부님 등 많은 분들이 참여해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 [사진]삼삼오오 모여 질문과 경험을 나누는 지구농부
먼저, 밥부터 — 오남도 농부님의 밥상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오남도 농부님이 차려주신 밥상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꽃비원 농장에서 직접 채집하고 수확한 재료들로 정성껏 준비해 주신 밥상이었습니다. 소감 나누는 자리에서 한 농부님이 말했습니다. "저답지 않게 밥을 진짜 많이 먹었어요." 다들 웃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습니다. 잘 차린 밥 한 끼가 사람을 얼마나 느슨하게 만드는지 — 그 밥상 덕분에 강의실 자리에 앉아서도 마음이 한결 열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사진] 오남도 농부님의 메뉴 설명 / 농장의 수확물로 차려낸 점심 / 뽕잎순과 들깨를 넣어 지은 밥

📷 [사진] 강의 풍경 — 정광하 농부(꽃비원)와 참석자들
이날 강의는 꽃비원 키친에서 진행된 실내강의와 꽃비원 농장에서 진행된 현장투어로 나뉘었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농부님들도 질문과 의견을 보탰고, 메모하는 손이 바쁠 정도로 알찬 강의가 이뤄졌습니다.
농장 설계의 핵심 - 구역, 관수, 동선
꽃비원의 3구역 - 자급, 생산, 채집
약 2천 평의 꽃비원 농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자급 구역입니다. 약 200~300평 정도로, 상추·고추·토마토처럼 식탁에서 바로 쓰는 1년생 작물들을 키우는 곳입니다. 요리할 때 금방 나가서 딸 수 있도록, 주방(입구)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했습니다.
두 번째는 생산 구역입니다. 배나무가 주로 심어진 구역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공간입니다. 풀 관리, 봉지 씌우기, 유인 작업 등 손이 많이 가는 작물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채집 구역입니다. 고사리, 취나물, 밤나무, 포도나무처럼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거두면 되는 다년생 작물들이 있는 곳입니다. 손이 적게 가고 자연의 흐름에 맡겨도 되는, 말 그대로 채집하는 공간입니다.
이 세 구역의 분류는 단순히 작물 종류의 분류가 아닙니다. 농부의 노동력과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를 미리 계획한 것입니다.

🖼️ [슬라이드] 농장 구역 지도 — 자급·생산·채집 구역 구분
관수 시설을 먼저!
정광하 농부님이 농장을 처음 조성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수 시설을 까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수를 파고 펌프를 설치한 뒤, 농장 전체에 라인을 깔았습니다. 그렇게 해두면 나중에 새로운 구역을 만들더라도, 호스를 연결하면 바로 물을 줄 수 있습니다. 이로서 농부의 물 걱정이 덜어진 셈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건물이나 구조물을 먼저 짓고 나면 관수 시설 설치가 훨씬 복잡해지는 것처럼, 농장 설계에서 물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습니다.
길을 꺾으면 공간이 생긴다
꽃비원은 처음에 입구부터 농장 안까지 일직선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길을 약간 꺾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제안도 있었고, 남해의 ‘섬이 정원’에서 영감도 받았습니다. 길이 꺾이자 농장이 달라 보였습니다.
"딱 들어오면 안이 안 보여요. 꺾어서 돌면 그때서야 확 펼쳐지는 거죠. 그 순간이 재미있어요."
입구에는 황금회화나무가 하나 서 있습니다. 나무가 조금 더 자라면 안쪽이 더 잘 가려질 것이고, 그러면 꺾어 들어가는 순간의 '발견'이 더 극적으로 연출될 것입니다. 공간을 일방향으로 다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다음 장면으로 이어가도록 한 설계가 꽃비원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너멍굴 농장 사례 — 경사진 땅과 농장 설계
강의 중반, 너멍굴 농장의 설계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전북 완주의 너멍굴 농장은 경사진 땅입니다. 산이 있고, 물이 흘러내려가고, 옆에는 논이 있는 땅.
경사진 땅은 고려할 것이 많습니다. 우선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물이 흘러내려 닿는 낮은 쪽에는 산수유나 미나리처럼 수분을 좋아하는 작물을 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경사가 심한 비탈에는 산딸기처럼 번지는 식물을 심어 토양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밤나무나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처럼 키 큰 나무들은 태양광 시설이 있는 낮은 쪽에 배치해서, 시각적 경계도 만들고,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풍경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숭아, 배, 감처럼 손이 많이 가는 과일나무들은 중간쯤에 두어 오가기 편하게 했습니다. 해가 머무는 시간이 긴 쪽과 짧은 쪽을 확인하고, 빛이 필요한 작물과 그늘을 견딜 수 있는 작물을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트랙터 같은 큰 기계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과, 사람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도 처음부터 구분해 두었습니다. 한번 파놓은 길은 나중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이 동선을 미리 그려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 [슬라이드] 너멍굴 농장 사례 '경사진 땅과 농장 설계'
나무 가꾸기 — 전정·정지의 기초
어느덧 나무 관리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여러 해 과일나무를 길러온 정광하 농부님의 경험이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지(整枝)는 나무의 전체 골격, 즉 수형을 잡는 일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나무를 키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전정(剪定)은 그 골격 안에서 잔가지를 어떻게 관리해서 열매를 잘 맺게 할 것인지를 다루는 작업입니다.
과일 나무의 성질과 전정·정지
"조경수는 모양만 보고 정리하면 되는데, 과일 나무는 좀 달라요. 꽃눈이 어디에 어떻게 붙는지를 보면서 해야 되거든요.”
나무마다 꽃눈이 맺히는 방식이 다릅니다. 1년생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고, 2년생이나 3년생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포도나 무화과는 전자, 배나 사과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정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나무는 위로 에너지를 집중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높고, 아래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그래서 그냥 두면 나무는 계속 위로만 자라려 합니다. 분지 각도가 작을수록(즉, 가지가 수직에 가까울수록) 세력이 강해집니다.
이 성질을 이해하고 나면, 가지를 옆으로 유인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가지를 아래로 눕히면 나무의 위로 향하는 에너지가 분산되고, 그러면 꽃눈이 더 잘 형성됩니다. 열매가 안 열리던 나무가 유인 하나로 확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무의 균형 읽기(CN비와 TR율)
CN비(탄소 대 질소 비율)와 TR율(지상부 대 지하부 비율)라는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꽤 직관적인 이야기입니다.
강전정을 하면(즉, 가지를 많이 잘라내면) 잎이 줄어드니 탄소 고정이 줄고 질소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집니다. 그러면 나무가 영양 생장(줄기와 잎을 키우는 것)에 치우쳐 열매를 맺는 생식 생장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잎이 너무 무성하면 질소가 부족해져 나무 세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중요합니다.
TR율은 지상부(가지와 잎)와 지하부(뿌리)의 균형입니다. 강전정을 하면 지상부가 줄어드는 대신 새 가지가 무섭게 올라옵니다. 에너지가 어딘가로 뻗어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지속되면 뿌리 성장이 오히려 억제됩니다. 겉으로는 무성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점점 약해지는 것입니다.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이 무너지면 나무가 오래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등나무의 꽃이 피지 않던 이유
시골살이에서 균형을 잡던 정광하 농부님은 나무를 가꾸는 데에도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꽃비원에는 등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몇 년을 키웠는데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매했던 온라인 사이트까지 찾아서 환불을 요청할까 고민했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해, 시험 삼아 한 그루를 과감하게 전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그해 꽃이 피었습니다.
비결은 바로 CN비와 TR율의 원리였습니다. 등나무가 영양 생장에만 집중하느라 꽃눈을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지를 잘라 지상부를 줄이자, 비로소 생식 생장으로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꽃이 안 핀다고 뽑아버렸다면,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볼 수 없었을 5월의 주렁주렁 등나무꽃을 보게 되었다며 오남도 농부님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수형의 종류 - 어떤 모양으로 키울 것인가
나무의 수형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뉩니다.
주관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 위로 쭉 뻗는 형태입니다. 밤나무처럼 아래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줍는 방식이라면 주관형이 맞습니다. 하지만 배나 사과처럼 직접 손으로 따야 하는 과일나무를 주관형으로 키우면, 나무가 클수록 위쪽 열매는 딸 수 없게 됩니다.
개심자연형과 변칙주거형은 중심 가지를 일정 높이에서 정리하고, 옆으로 가지를 벌려가며 키우는 방식입니다. 햇볕이 나무 안쪽까지 골고루 들어와서 꽃눈 형성이 좋고, 작업도 편합니다. 꽃비원의 매실나무가 이 형태입니다.
Y자 수형(이본 주지형)은 꽃비원의 배나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조물에 기대어 두 줄기를 Y자로 벌려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공간 효율이 좋고 햇볕 관리도 용이합니다. 배나무를 한쪽 벽에 납작하게 붙여 키우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발상입니다.
"정해진 수형은 없어요. 내가 이 나무를 어떻게 관리하고 싶은가, 이 공간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됐습니다. 농부님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고민들이 알차고 솔직하게 쏟아졌습니다.




📷 [사진] 강의 풍경 — 열띤 질문과 경험 나눔
"15년 넘게 방치된 배나무가 있는데, 꽃은 피어요. 그런데 열매는 거의 없어요. 전정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배나무 재배 품종의 약 80%가 신고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고배는 자가 수분이 되지 않습니다. 즉, 신고배 혼자서는 꽃이 아무리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른 품종의 배나무가 수분수로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수원에서는 신고배를 심더라도 중간중간에 수분수를 심습니다. 시장에서 신고배 외에 가끔 다른 품종의 배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배를 적극적으로 팔려고 키운 게 아니라, 수분을 위해 심었더니 거기서도 배가 달린 것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배나무는 만생종이라고 했는데, 품종을 다시 확인하고 적절한 수분수를 심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에 전정을 통해 키를 낮추고 관리하기 쉬운 수형으로 바꾸는 것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한번 크게 자란 나무라도,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황토 땅에 여러 작물을 심어도 다 잘 자라나요?”
꽃비원의 땅은 황토입니다. 정광하 농부님은 “다 잘 자라는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잎채소와 열매채소(상추, 가지, 고추)는 황토에서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 잘 안 컸습니다. 반면 뿌리채소(마늘, 양파, 감자)는 황토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당근이나 비트는 크기가 좀 작긴 하지만 향이 좋고 맛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꽃비원이 선택한 방법이 틀밭이었습니다. 황토에 마사토를 섞어 토양 개량을 하고, 틀 안에 넣어 배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해봤더니, 기존보다 생육이 약 2배 정도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지역마다 토질이 다 다르니까, 잘 안 되는 것들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고민해보시는 것도 방법이에요."
틀밭의 높이도 작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꽃비원에서 쓰는 기성품 틀밭은 높이가 약 20cm 정도. 잎채소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지만, 감자처럼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작물은 틀을 몇 단 더 쌓아 높이를 높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우스를 단동으로 두 동 지을까요, 연동으로 할까요?”
이 질문이 나오자 하우스를 직접 경험한 농부들이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꽤 실질적인 토론이 됐습니다.
50평짜리 두 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가운데를 비워두고 양쪽에 단동으로 지을지, 아니면 연동으로 붙일지가 고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허브나 잎채소처럼 빛이 많이 필요한 작물, 다른 하나는 유칼립투스처럼 조금 다른 환경이 필요한 작물을 키울 계획이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농부님이 여러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우선 단동 두 개를 붙여두면 가운데 공간이 문제가 됩니다. 비가 오면 두 하우스 사이로 물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때문에, 그 가운데 바닥을 그냥 흙으로 두는 건 좋지 않습니다. 창고로 활용하거나 덮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우스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한쪽 하우스가 다른 쪽 햇볕을 가리는 문제도 생깁니다.
더 중요한 건 환기였습니다. "요즘은 겨울 난방보다 여름 환기가 훨씬 더 중요해요." 기후 변화로 여름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동 하우스는 여름 환기가 어렵습니다. 천창을 여러 개 두거나, 연동으로 가서 측창을 길게 내는 것이 환기에 유리합니다.
연동으로 하면 차광막이나 커튼을 설치해서 구역별로 빛 관리도 할 수 있습니다. 빛이 많이 필요한 구역과 조금 필요한 구역을 한 지붕 아래에서 커튼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하우스 파이프도 예전에는 지름 20mm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강풍과 폭설에 대비해 25~28mm를 기본으로 쓴다고 했습니다.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시설 농업을 고민하는 농부들이 많은 만큼, 이 주제는 별도 특강으로 더 깊이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이 물을 뽑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꽃비원은 지하수를 파서 관수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지속 가능한 방법인지 계속 고민이 된다고 했습니다.
논산 인근에는 딸기 하우스가 많습니다.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수막 재배를 하는 농가들이 많다 보니, 겨울철에는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하수는 무한한 자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부들이 각자의 방법을 꺼냈습니다. 빗물 탱크를 설치해서 빗물을 모아두는 농장, 논 옆에 있어서 논에 들어오는 물을 함께 받아 쓰는 농장, 흐르는 물이 있는 조건 좋은 농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우스 지붕이 넓으면 빗물을 꽤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물받이를 만들어 탱크에 저장하고 모터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꿈꾼다는 농부도 있었습니다.
꽃비원도 결국 가려고 하는 방향은 빗물 순환입니다. 지금은 과도기적으로 지하수를 쓰고 있지만, 빗물을 어떻게 저장하고 농장에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풀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이 질문은 농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꽃비원의 풀 관리는 구역마다 다릅니다. 길은 잔디 깎는 기계로 쓱 한 번 밀면 한두 시간 안에 끝납니다. 나무 밑은 예초기로 부분 부분 처리합니다. 채집 구역은 1년에 한 번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산 구역은 1년에 최소 세 번 이상 풀을 건드립니다. 그런데 방법이 독특했습니다. 봄풀이 어느 정도 자란 다음, 씨앗이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한 번 벱니다. 그다음에는 여름풀이 최대한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놔둡니다. 그렇게 두꺼운 풀이 올라오면, 한여름에 한 번 확 베어버립니다. 그러면 잘린 풀이 두꺼운 멀칭이 되어 땅을 덮습니다. 그 위로는 풀이 한동안 잘 자라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풀을 없애는 게 아니라 풀의 생장 리듬에 맞춰가는 것입니다. 비닐 멀칭 대신 풀 자체가 멀칭이 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행 농업과 생태 농업 사이에서 겪는 세대 갈등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비닐 멀칭, 경운, 제초제가 당연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에서 공부하고 나니 최대한 그런 방식을 안 쓰고 싶어지는데, 정작 눈앞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걸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게 되더라고요."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거기에는 자기만의 농사 철학을 지켜내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퇴비는 어떻게 쓰시나요? 따로 만드시는 건지, 사서 쓰시는 건지."
꽃비원도 처음에는 계분(닭 분뇨)을 샀습니다. 지금도 쓰긴 하는데 양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목표는 자가 순환입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하거나, 전정하고 나온 나뭇가지들을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어느 정도 썩으면 흙과 섞어 토양 양분으로 돌려쓰는 것입니다.
"경축순환농법처럼 완전한 자급 순환까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나올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순환시키고 싶어요."
한 번에 다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비닐 멀칭도 처음에는 농장 전체를 덮었다가, 지금은 다 걷어내고 아주 일부만 하고 있습니다. 퇴비도 외부 투입을 줄여가면서 자급 비율을 높여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도 농장이 숙성되어 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농부의 숲이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후 위기 시대에 생물 다양성을 지켜가면서 노동력도 보존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방식인지, 어느 쪽인가요?"
마르쉐친구들 소라가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벽을 따라 와이어를 두고 사과나무 가지를 납작하게 유인해서 키우는 방식이 화제가 됐는데, 그 방식이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을 고르게 받을 수 있어 효율이 좋다는 건 맞지만, 그게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방법인지, 아니면 먹거리 숲이 지향하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산성과 생태성이 반드시 대립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퍼머컬처 연구를 언급하며 한 분이 말했습니다. 제대로 설계된 먹거리 숲은 기존 단일 재배 방식보다 오히려 40~50%까지 수확량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생태를 지키기 위해 생산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생태적으로 운영했을 때 오히려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반 식재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파프리카 옆에 대파를 심으면 대파가 병충해를 막아줍니다. 앞에 당근을 심으면 공간이 더 효율적으로 쓰입니다. 같은 면적에서 한 가지 작물만 키우는 것보다 실질적인 수확량이 더 많아집니다.
꽃비원 자체도 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천 평 안에서 1년생 작물을 키우는 자급 구역은 300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다년생 작물입니다. "이 다년생 작물들을 200% 활용할 수 있다면, 생산량도 소득도 더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다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먹거리 숲이 지향하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할머니가 돼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노동, 노동력이 적게 들어도 지속 가능한 농장, 생태적이면서도 소득도 올릴 수 있는 농장! 마르쉐 농부의숲 프로젝트를 통해 꿈이 실현되기를 꿈꿔봅니다.
후원_벌새클럽, 글로벌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화미사]
정리_마르쉐친구들
지난 5월 21일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보슬비로 바뀌었습니다. 초록 잎마다 맺힌 물방울이 싱그럽게 빛나던 날, 마르쉐친구들과 출점팀은 충남 논산 꽃비원으로 향했습니다. 14년 동안 꽃비원을 일궈온 정광하 농부님으로부터 먹거리숲에 관한 귀한 경험을 나눔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가까이 전북 완주 너멍굴농장 진남현 농부님, 서북쪽 강화도 반팜의 반윤욱 농부님, 파주 섬띵인그린의 김현명 농부님, 강원도 먹거리 숲을 가꾸는 보라시골 가족들, 목장에서 우유를 생산하며 유가공품 카페를 운영하는 효덕목장, 경남 진주에서 먹거리숲을 가꾸고 있는 해든농장의 정해든 농부님 모녀, 잔라남도 순천의 구목마을곰씨네 이태영 농부님 등 많은 분들이 참여해 서로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 [사진]삼삼오오 모여 질문과 경험을 나누는 지구농부
먼저, 밥부터 — 오남도 농부님의 밥상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밥을 먹었습니다. 오남도 농부님이 차려주신 밥상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꽃비원 농장에서 직접 채집하고 수확한 재료들로 정성껏 준비해 주신 밥상이었습니다. 소감 나누는 자리에서 한 농부님이 말했습니다. "저답지 않게 밥을 진짜 많이 먹었어요." 다들 웃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습니다. 잘 차린 밥 한 끼가 사람을 얼마나 느슨하게 만드는지 — 그 밥상 덕분에 강의실 자리에 앉아서도 마음이 한결 열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사진] 오남도 농부님의 메뉴 설명 / 농장의 수확물로 차려낸 점심 / 뽕잎순과 들깨를 넣어 지은 밥
📷 [사진] 강의 풍경 — 정광하 농부(꽃비원)와 참석자들
이날 강의는 꽃비원 키친에서 진행된 실내강의와 꽃비원 농장에서 진행된 현장투어로 나뉘었습니다. 말수가 많지 않은 농부님들도 질문과 의견을 보탰고, 메모하는 손이 바쁠 정도로 알찬 강의가 이뤄졌습니다.
농장 설계의 핵심 - 구역, 관수, 동선
꽃비원의 3구역 - 자급, 생산, 채집
약 2천 평의 꽃비원 농장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자급 구역입니다. 약 200~300평 정도로, 상추·고추·토마토처럼 식탁에서 바로 쓰는 1년생 작물들을 키우는 곳입니다. 요리할 때 금방 나가서 딸 수 있도록, 주방(입구)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했습니다.
두 번째는 생산 구역입니다. 배나무가 주로 심어진 구역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공간입니다. 풀 관리, 봉지 씌우기, 유인 작업 등 손이 많이 가는 작물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채집 구역입니다. 고사리, 취나물, 밤나무, 포도나무처럼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거두면 되는 다년생 작물들이 있는 곳입니다. 손이 적게 가고 자연의 흐름에 맡겨도 되는, 말 그대로 채집하는 공간입니다.
이 세 구역의 분류는 단순히 작물 종류의 분류가 아닙니다. 농부의 노동력과 시간을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가를 미리 계획한 것입니다.
🖼️ [슬라이드] 농장 구역 지도 — 자급·생산·채집 구역 구분
관수 시설을 먼저!
정광하 농부님이 농장을 처음 조성할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수 시설을 까는 것이었습니다. 지하수를 파고 펌프를 설치한 뒤, 농장 전체에 라인을 깔았습니다. 그렇게 해두면 나중에 새로운 구역을 만들더라도, 호스를 연결하면 바로 물을 줄 수 있습니다. 이로서 농부의 물 걱정이 덜어진 셈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건물이나 구조물을 먼저 짓고 나면 관수 시설 설치가 훨씬 복잡해지는 것처럼, 농장 설계에서 물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습니다.
길을 꺾으면 공간이 생긴다
꽃비원은 처음에 입구부터 농장 안까지 일직선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길을 약간 꺾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제안도 있었고, 남해의 ‘섬이 정원’에서 영감도 받았습니다. 길이 꺾이자 농장이 달라 보였습니다.
"딱 들어오면 안이 안 보여요. 꺾어서 돌면 그때서야 확 펼쳐지는 거죠. 그 순간이 재미있어요."
입구에는 황금회화나무가 하나 서 있습니다. 나무가 조금 더 자라면 안쪽이 더 잘 가려질 것이고, 그러면 꺾어 들어가는 순간의 '발견'이 더 극적으로 연출될 것입니다. 공간을 일방향으로 다 보여주지 않고, 조금씩 다음 장면으로 이어가도록 한 설계가 꽃비원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너멍굴 농장 사례 — 경사진 땅과 농장 설계
강의 중반, 너멍굴 농장의 설계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전북 완주의 너멍굴 농장은 경사진 땅입니다. 산이 있고, 물이 흘러내려가고, 옆에는 논이 있는 땅.
경사진 땅은 고려할 것이 많습니다. 우선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물이 흘러내려 닿는 낮은 쪽에는 산수유나 미나리처럼 수분을 좋아하는 작물을 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경사가 심한 비탈에는 산딸기처럼 번지는 식물을 심어 토양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밤나무나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처럼 키 큰 나무들은 태양광 시설이 있는 낮은 쪽에 배치해서, 시각적 경계도 만들고,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풍경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복숭아, 배, 감처럼 손이 많이 가는 과일나무들은 중간쯤에 두어 오가기 편하게 했습니다. 해가 머무는 시간이 긴 쪽과 짧은 쪽을 확인하고, 빛이 필요한 작물과 그늘을 견딜 수 있는 작물을 나누어 배치했습니다.
트랙터 같은 큰 기계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과, 사람만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길도 처음부터 구분해 두었습니다. 한번 파놓은 길은 나중에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 이 동선을 미리 그려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 [슬라이드] 너멍굴 농장 사례 '경사진 땅과 농장 설계'
나무 가꾸기 — 전정·정지의 기초
어느덧 나무 관리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여러 해 과일나무를 길러온 정광하 농부님의 경험이 빛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지(整枝)는 나무의 전체 골격, 즉 수형을 잡는 일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나무를 키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전정(剪定)은 그 골격 안에서 잔가지를 어떻게 관리해서 열매를 잘 맺게 할 것인지를 다루는 작업입니다.
과일 나무의 성질과 전정·정지
"조경수는 모양만 보고 정리하면 되는데, 과일 나무는 좀 달라요. 꽃눈이 어디에 어떻게 붙는지를 보면서 해야 되거든요.”
나무마다 꽃눈이 맺히는 방식이 다릅니다. 1년생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고, 2년생이나 3년생 가지에서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포도나 무화과는 전자, 배나 사과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전정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식물학적으로 보면 나무는 위로 에너지를 집중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꼭대기에 가까울수록 에너지가 높고, 아래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그래서 그냥 두면 나무는 계속 위로만 자라려 합니다. 분지 각도가 작을수록(즉, 가지가 수직에 가까울수록) 세력이 강해집니다.
이 성질을 이해하고 나면, 가지를 옆으로 유인하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가지를 아래로 눕히면 나무의 위로 향하는 에너지가 분산되고, 그러면 꽃눈이 더 잘 형성됩니다. 열매가 안 열리던 나무가 유인 하나로 확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무의 균형 읽기(CN비와 TR율)
CN비(탄소 대 질소 비율)와 TR율(지상부 대 지하부 비율)라는 개념도 등장했습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꽤 직관적인 이야기입니다.
강전정을 하면(즉, 가지를 많이 잘라내면) 잎이 줄어드니 탄소 고정이 줄고 질소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집니다. 그러면 나무가 영양 생장(줄기와 잎을 키우는 것)에 치우쳐 열매를 맺는 생식 생장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잎이 너무 무성하면 질소가 부족해져 나무 세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 중요합니다.
TR율은 지상부(가지와 잎)와 지하부(뿌리)의 균형입니다. 강전정을 하면 지상부가 줄어드는 대신 새 가지가 무섭게 올라옵니다. 에너지가 어딘가로 뻗어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상태가 지속되면 뿌리 성장이 오히려 억제됩니다. 겉으로는 무성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점점 약해지는 것입니다. 지상부와 지하부의 균형이 무너지면 나무가 오래 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등나무의 꽃이 피지 않던 이유
시골살이에서 균형을 잡던 정광하 농부님은 나무를 가꾸는 데에도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꽃비원에는 등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몇 년을 키웠는데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매했던 온라인 사이트까지 찾아서 환불을 요청할까 고민했을 정도였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해, 시험 삼아 한 그루를 과감하게 전정했습니다. 그랬더니 그해 꽃이 피었습니다.
비결은 바로 CN비와 TR율의 원리였습니다. 등나무가 영양 생장에만 집중하느라 꽃눈을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가지를 잘라 지상부를 줄이자, 비로소 생식 생장으로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꽃이 안 핀다고 뽑아버렸다면, 중간에 포기했더라면 볼 수 없었을 5월의 주렁주렁 등나무꽃을 보게 되었다며 오남도 농부님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수형의 종류 - 어떤 모양으로 키울 것인가
나무의 수형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뉩니다.
주관형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나무의 모습, 위로 쭉 뻗는 형태입니다. 밤나무처럼 아래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줍는 방식이라면 주관형이 맞습니다. 하지만 배나 사과처럼 직접 손으로 따야 하는 과일나무를 주관형으로 키우면, 나무가 클수록 위쪽 열매는 딸 수 없게 됩니다.
개심자연형과 변칙주거형은 중심 가지를 일정 높이에서 정리하고, 옆으로 가지를 벌려가며 키우는 방식입니다. 햇볕이 나무 안쪽까지 골고루 들어와서 꽃눈 형성이 좋고, 작업도 편합니다. 꽃비원의 매실나무가 이 형태입니다.
Y자 수형(이본 주지형)은 꽃비원의 배나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조물에 기대어 두 줄기를 Y자로 벌려 관리하는 방식입니다. 공간 효율이 좋고 햇볕 관리도 용이합니다. 배나무를 한쪽 벽에 납작하게 붙여 키우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발상입니다.
"정해진 수형은 없어요. 내가 이 나무를 어떻게 관리하고 싶은가, 이 공간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선택하면 됩니다."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됐습니다. 농부님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고민들이 알차고 솔직하게 쏟아졌습니다.
📷 [사진] 강의 풍경 — 열띤 질문과 경험 나눔
"15년 넘게 방치된 배나무가 있는데, 꽃은 피어요. 그런데 열매는 거의 없어요. 전정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배나무 재배 품종의 약 80%가 신고배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고배는 자가 수분이 되지 않습니다. 즉, 신고배 혼자서는 꽃이 아무리 피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른 품종의 배나무가 수분수로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과수원에서는 신고배를 심더라도 중간중간에 수분수를 심습니다. 시장에서 신고배 외에 가끔 다른 품종의 배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배를 적극적으로 팔려고 키운 게 아니라, 수분을 위해 심었더니 거기서도 배가 달린 것입니다.
질문하신 분의 배나무는 만생종이라고 했는데, 품종을 다시 확인하고 적절한 수분수를 심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다음에 전정을 통해 키를 낮추고 관리하기 쉬운 수형으로 바꾸는 것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한번 크게 자란 나무라도, 방법이 없지 않습니다.
“황토 땅에 여러 작물을 심어도 다 잘 자라나요?”
꽃비원의 땅은 황토입니다. 정광하 농부님은 “다 잘 자라는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잎채소와 열매채소(상추, 가지, 고추)는 황토에서 배수가 잘 되지 않아서 잘 안 컸습니다. 반면 뿌리채소(마늘, 양파, 감자)는 황토에서도 잘 자랐습니다. 당근이나 비트는 크기가 좀 작긴 하지만 향이 좋고 맛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꽃비원이 선택한 방법이 틀밭이었습니다. 황토에 마사토를 섞어 토양 개량을 하고, 틀 안에 넣어 배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1년을 해봤더니, 기존보다 생육이 약 2배 정도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지역마다 토질이 다 다르니까, 잘 안 되는 것들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고민해보시는 것도 방법이에요."
틀밭의 높이도 작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꽃비원에서 쓰는 기성품 틀밭은 높이가 약 20cm 정도. 잎채소라면 이 정도면 충분하지만, 감자처럼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작물은 틀을 몇 단 더 쌓아 높이를 높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우스를 단동으로 두 동 지을까요, 연동으로 할까요?”
이 질문이 나오자 하우스를 직접 경험한 농부들이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꽤 실질적인 토론이 됐습니다.
50평짜리 두 동을 계획하고 있는데, 가운데를 비워두고 양쪽에 단동으로 지을지, 아니면 연동으로 붙일지가 고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허브나 잎채소처럼 빛이 많이 필요한 작물, 다른 하나는 유칼립투스처럼 조금 다른 환경이 필요한 작물을 키울 계획이었습니다.
경험이 풍부한 농부님이 여러 이야기를 나눠주었습니다. 우선 단동 두 개를 붙여두면 가운데 공간이 문제가 됩니다. 비가 오면 두 하우스 사이로 물이 엄청나게 쏟아지기 때문에, 그 가운데 바닥을 그냥 흙으로 두는 건 좋지 않습니다. 창고로 활용하거나 덮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하우스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한쪽 하우스가 다른 쪽 햇볕을 가리는 문제도 생깁니다.
더 중요한 건 환기였습니다. "요즘은 겨울 난방보다 여름 환기가 훨씬 더 중요해요." 기후 변화로 여름이 점점 더 더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동 하우스는 여름 환기가 어렵습니다. 천창을 여러 개 두거나, 연동으로 가서 측창을 길게 내는 것이 환기에 유리합니다.
연동으로 하면 차광막이나 커튼을 설치해서 구역별로 빛 관리도 할 수 있습니다. 빛이 많이 필요한 구역과 조금 필요한 구역을 한 지붕 아래에서 커튼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하우스 파이프도 예전에는 지름 20mm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강풍과 폭설에 대비해 25~28mm를 기본으로 쓴다고 했습니다.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시설 농업을 고민하는 농부들이 많은 만큼, 이 주제는 별도 특강으로 더 깊이 다뤄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언제까지 이 물을 뽑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꽃비원은 지하수를 파서 관수 시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지속 가능한 방법인지 계속 고민이 된다고 했습니다.
논산 인근에는 딸기 하우스가 많습니다.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수막 재배를 하는 농가들이 많다 보니, 겨울철에는 지하수 수위가 내려가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하수는 무한한 자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농부들이 각자의 방법을 꺼냈습니다. 빗물 탱크를 설치해서 빗물을 모아두는 농장, 논 옆에 있어서 논에 들어오는 물을 함께 받아 쓰는 농장, 흐르는 물이 있는 조건 좋은 농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우스 지붕이 넓으면 빗물을 꽤 많이 받을 수 있으니, 물받이를 만들어 탱크에 저장하고 모터로 순환시키는 시스템을 꿈꾼다는 농부도 있었습니다.
꽃비원도 결국 가려고 하는 방향은 빗물 순환입니다. 지금은 과도기적으로 지하수를 쓰고 있지만, 빗물을 어떻게 저장하고 농장에 다시 흘려보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풀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이 질문은 농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했을 것입니다.
꽃비원의 풀 관리는 구역마다 다릅니다. 길은 잔디 깎는 기계로 쓱 한 번 밀면 한두 시간 안에 끝납니다. 나무 밑은 예초기로 부분 부분 처리합니다. 채집 구역은 1년에 한 번도 안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산 구역은 1년에 최소 세 번 이상 풀을 건드립니다. 그런데 방법이 독특했습니다. 봄풀이 어느 정도 자란 다음, 씨앗이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한 번 벱니다. 그다음에는 여름풀이 최대한 무성하게 자랄 때까지 놔둡니다. 그렇게 두꺼운 풀이 올라오면, 한여름에 한 번 확 베어버립니다. 그러면 잘린 풀이 두꺼운 멀칭이 되어 땅을 덮습니다. 그 위로는 풀이 한동안 잘 자라지 않습니다.
이 방법은 풀을 없애는 게 아니라 풀의 생장 리듬에 맞춰가는 것입니다. 비닐 멀칭 대신 풀 자체가 멀칭이 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행 농업과 생태 농업 사이에서 겪는 세대 갈등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비닐 멀칭, 경운, 제초제가 당연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에서 공부하고 나니 최대한 그런 방식을 안 쓰고 싶어지는데, 정작 눈앞에서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걸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게 되더라고요."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였지만, 거기에는 자기만의 농사 철학을 지켜내려는 진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퇴비는 어떻게 쓰시나요? 따로 만드시는 건지, 사서 쓰시는 건지."
꽃비원도 처음에는 계분(닭 분뇨)을 샀습니다. 지금도 쓰긴 하는데 양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목표는 자가 순환입니다.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화하거나, 전정하고 나온 나뭇가지들을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어느 정도 썩으면 흙과 섞어 토양 양분으로 돌려쓰는 것입니다.
"경축순환농법처럼 완전한 자급 순환까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나올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순환시키고 싶어요."
한 번에 다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비닐 멀칭도 처음에는 농장 전체를 덮었다가, 지금은 다 걷어내고 아주 일부만 하고 있습니다. 퇴비도 외부 투입을 줄여가면서 자급 비율을 높여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도 농장이 숙성되어 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농부의 숲이 생산량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기후 위기 시대에 생물 다양성을 지켜가면서 노동력도 보존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방식인지, 어느 쪽인가요?"
마르쉐친구들 소라가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벽을 따라 와이어를 두고 사과나무 가지를 납작하게 유인해서 키우는 방식이 화제가 됐는데, 그 방식이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을 고르게 받을 수 있어 효율이 좋다는 건 맞지만, 그게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방법인지, 아니면 먹거리 숲이 지향하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산성과 생태성이 반드시 대립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퍼머컬처 연구를 언급하며 한 분이 말했습니다. 제대로 설계된 먹거리 숲은 기존 단일 재배 방식보다 오히려 40~50%까지 수확량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생태를 지키기 위해 생산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생태적으로 운영했을 때 오히려 더 많이 수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반 식재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파프리카 옆에 대파를 심으면 대파가 병충해를 막아줍니다. 앞에 당근을 심으면 공간이 더 효율적으로 쓰입니다. 같은 면적에서 한 가지 작물만 키우는 것보다 실질적인 수확량이 더 많아집니다.
꽃비원 자체도 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천 평 안에서 1년생 작물을 키우는 자급 구역은 300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다년생 작물입니다. "이 다년생 작물들을 200% 활용할 수 있다면, 생산량도 소득도 더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다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먹거리 숲이 지향하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할머니가 돼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노동, 노동력이 적게 들어도 지속 가능한 농장, 생태적이면서도 소득도 올릴 수 있는 농장! 마르쉐 농부의숲 프로젝트를 통해 꿈이 실현되기를 꿈꿔봅니다.
후원_벌새클럽, 글로벌 유기농 화장품 브랜드 [화미사]
정리_마르쉐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