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농부[마르쉐@와 지구농부③] 기다림으로 깊어지는 숲, 그 시간이 담긴 한 병 <작은알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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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와 지구농부


우리의 식탁에는 농부의 밭이 담깁니다.

‘마르쉐@와 지구농부’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땅을 되살리며 지구 생태계를 돌보는 지구농부의 밭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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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우리는 종종 효율을 따질수록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두 시간짜리 영화는 줄거리와 결론을 3분 만에 요약해 주는 숏폼 영상으로 대신하고, 새로운 취미 하나를 시작할 때도 한 달 안에 기초를 익힐 수 있을지, 무슨 일을 할 때도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부터 조급하게 따진다. 아낀 시간만큼 삶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렇게 빈틈없이 채우려 할수록, 천천히 알아가는 설렘과 서툰 채 머무르며 배워가는 시간,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것을 기다리며 부푸는 마음은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하지만 땅을 돌보는 지구농부의 풍요는 다르다. 더 많이, 더 빨리 거두기보다 자연의 속도에 농부의 시간을 지긋이 내맡긴다. 작물과 풀, 곤충과 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땅을 돌보고, 때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견딘다. 농부가 기다린 시간은 어느 날 열매가 되고, 씨앗이 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 어느덧 풍성한 숲이 된다. 


충주 수안보, 산자락이 감싸안은 비탈진 밭에 들어서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과수원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풀이 무성한 밭 위로 닭과 거위가 산책하며 벌레를 쪼아 먹고, 줄지어 선 포도나무 곁에는 헤이즐넛과 보리수 같은 친구나무가 어우러져 자란다. 포도밭이라기보다 숲에 가까운 프랑스인 도미니크와 한국인 신이현 농부가 함께 가꾸는 내추럴 와이너리, ‘작은알자스’다.


지금은 식물과 동물, 벌레와 미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숲밭을 이루고 있지만 이곳도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약용 작약밭을 포크레인으로 갈아엎어 흙먼지만 날리던 땅을 오래 바라봐야 했다. 몇 해를 땀 흘려 일해도 눈앞에 뚜렷한 결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동안 두 사람은 호밀과 토끼풀 씨앗을 뿌리고 작은 묘목을 돌봤다.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어 보여도 땅이 스스로 숨을 쉬고 살아갈 힘을 되찾기를 기다렸다.


나무 한 그루가 성숙해 제 몫을 다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년. 작은알자스의 포도밭은 이제 그 절반을 지났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 묘목을 심고 첫 열매를 맺기까지 5년, 수확한 포도가 와인이 되기까지 다시 몇 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긴 시간을 지나온 신이현 농부에게 지금 작은알자스는 어느 단계인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제 시작이에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을 지나, 두 농부는 어떻게 이 땅의 시간을 기다려왔을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밭에서 그들이 발견한 풍요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작은알자스의 시간은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까. 작은알자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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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충주에서 발견한
작은 알자스



Q. 프랑스에서 프로그래머로 살아가던 도미니크 농부님이 농사와 와인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컴퓨터와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것과, 밭에서 흙을 만지며 와인을 만드는 건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축에 있다고 볼 수도 있잖아요. 


포도나 와인이 저희에게 멀거나 생소한 존재는 아니었어요. 도미니크의 외가가 알자스에서 크게 포도 농사를 지으셨거든요. 어릴 적 포도 수확 철이 되면 온 식구가 밭에 모여 포도를 땄고, 어린 도미니크도 그 속에서 포도를 따는 시늉을 하며 자랐죠. 비록 아버지 대에는 농사를 짓지 않으셨지만, 깊은 어딘가 농부의 유전자가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알자스 자체가 곳곳에 포도밭과 와이너리가 펼쳐진 고장이다 보니, 농사와 와인으로의 연결은 무척 자연스러웠고, 도미니크는 언제나 농사를 짓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있었어요. 결국 도미니크는 농업학교에 진학해 퍼머컬처와 생명역동농법을 공부했죠. 



Q. 농부 유전자가 흐르고 있었군요. 그런데 두 분이 터전으로 선택한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이었어요. 와인의 본고장인 프랑스를 뒤로하고 한국으로 오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도미니크가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저희도 본격적으로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차릴 터전을 찾아 나섰어요. 프랑스의 유명한 포도 재배 지역은 땅값이 워낙 비싸서, 내추럴 와인 붐이 불면서 젊은 농부들이 모여들던 남프랑스 피레네 쪽으로 내려갔죠. 땅값도 상대적으로 저렴했고요. 그곳에서 포도밭도 둘러보고 양조장도 찾아다녔어요.


포도 농사를 짓기엔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막상 그곳에 서니 문득 ‘내가 여기서 평생 포도나 따면서 늙어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젊을 땐 타향살이가 좋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모국어로 마음 편히 소통하고,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며 살고 싶어졌거든요. 그래서 도미니크에게 "한국에 가서 농사를 지으면 어떨까?" 하고 제안했죠.


도미니크는 어디서든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는 반응이었어요. 당시 한국은 내추럴 와인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는데, 도미니크 입장에서는 오히려 와인으로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개척해 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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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추럴 와인의 불모지라는 점을 거꾸로 새로운 시작의 기회로 바라보신 거군요. 그런데 프랑스에서 배운 농법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왔을 때, 땅과 기후가 달라 겪은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도미니크는 프랑스에서 퍼머컬처와 생명역동농법을 공부해서 한국에 와서도 그 방식을 꽤 고집스럽게 지켜나간 편이에요. 일단 퍼머컬처농법은 땅의 상태를 관찰하고 거기에 맞춰 작물을 심는 농법이라 한국에서 적용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정작 애를 먹은 건 생명역동농법이었죠. 생명역동농법에서는 자연 증폭제 등 구해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은데, 초반에는 한국에서 그런 재료들을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땅과 농법보다도 더 큰 당혹감을 준 건 바로 ‘기후’였어요. 프랑스는 햇빛이 강렬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서 포도 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이거든요. 반면에 한국의 여름은 비가 엄청나게 내리고 지독하게 습하잖아요. 생각했던 것만큼 포도 농사가 되지 않으니까,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기후라는 외부 환경을 우리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래서 거기에 맞춰 이렇게도 시도해 보고 저렇게도 버텨보면서, 충주 땅에 맞는 답을 하나씩 찾아나가고 있어요.



Q. 들으면서도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드네요. 기후부터 농법까지 맨땅에서 하나하나 몸으로 부딪치며 길을 만들어오신 거잖아요. 그렇다면 연고도 없던 충주, 그리고 지금의 이 밭과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처음 이곳을 보셨을 때, 어떤 마음이 들어 정착을 결심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연고지가 있었다면 그곳으로 딱 결정했을 텐데 연고가 없으니, 포도나 사과 같은 과일이 잘 되는 지역을 계속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아는 후배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로 땅을 한번 보러 오라고 해서 방문했는데, 첫눈에 딱 마음에 들더라고요.

산이 나지막하게 둘러싸여 있고 그 안에 밭과 마을이 소복하게 담겨 있는 풍광이 도미니크의 고향 알자스와 신기할 정도로 많이 닮아 있었거든요. 원래 과일나무는 비탈진 남향 땅이 제일 좋은데, 이 땅이 산 쪽으로 남향이면서 살짝 비탈이 져 있어서 과수 농사를 짓기에도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어요.

사실 이전부터 후배를 만나러 이 동네에 가끔 오곤 했는데, 마을 입구에 싹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이상하게 포근해지고 기분이 좋아졌거든요. 평소에도 참 좋아하던 동네에 이렇게 좋은 땅이 나와서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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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시간을 내어주는

지구농사



Q. 알자스를 닮은 풍경을 품은 이곳에 터를 잡으셨지만, 막상 농사를 시작하고 나서는 눈에 보이는 결실을 얻기까지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잖아요. 그 길고 막막했던 시간을 두 분은 어떤 마음으로 견뎌내셨나요?


이곳은 6년 동안 작약밭이었고, 저희가 밭을 계약하게 되며 마지막 작약을 포크레인으로 뽑아간, 그야말로 폐허 상태였어요. 그래서 밭이 비워진 뒤에도 바로 포도나무를 심을 수는 없었죠. 호밀을 뿌리고 토끼풀을 심으며 지친 땅을 다독여주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사실 저는 옆에서 돕는 위치고 실제로 농사를 주도하는 건 도미니크잖아요. 도미니크가 워낙 자기 농사 철학이나 고집이 세다 보니 처음엔 믿고 따라갔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포도밭에 잡풀만 가득하고 해가 지나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더라고요. 솔직히 속에서 불쑥불쑥 짜증이 났죠. ‘도대체 네가 하는 일은 해가 지나도 돌아오는 게 없냐?’, ‘잡초만 무성한데 대체 언제 열매가 열리기는 하는 거냐?’ 하면서요. 


그러다가도 묵묵히 땀 흘리며 밭을 일구는 도미니크 뒷모습을 보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옆에서 잔소리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혼자 반성하곤 했어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우러 나갔다가, 나무 심고 돌보는 일에 끝이 없으면 ‘아, 이건 또 언제 끝나나’ 속이 끓고… 그렇게 끝없는 반성과 각오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배추나 고추 같은 한해살이 작물은 심은 그해에 바로 수확을 얻지만, 나무는 전혀 그렇지 않잖아요. 아무리 땀을 흘려 농사를 지어도 당장 눈앞에 수확물이 없으니, 마치 매일 실패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나무 농사를 짓는다는 건 경제적으로 버틸 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그런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감'을 견뎌내는 정신적인 힘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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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에서 충주 땅에 맞는 답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특히 작은알자스에서는 포도밭을 '작은 우주'처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시잖아요. 농사를 잘 모르는 분들도 이해하기 쉽게, 작은알자스가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지 설명해 주신다면요?


퍼머컬처(Permaculture) 농법은 말 그대로 땅의 상태를 관찰하고 그 흐름에 맞춰 자연 친화적으로 농사를 짓는 거예요. 물이 많은 자리에는 물을 잘 흡수하는 나무를 심고, 건조한 자리에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 작물을 심는 식이죠. 또 물이 흘러내리는 길목에는 도랑을 파서 물을 좋아하는 식물을 심거나, 개구리와 새들이 찾아와 먹이를 먹을 수 있는 생태 공간을 만들어줘요. 포도밭이라고 해서 포도나무만 빼곡하게 심는 게 아니라, 포도와 어울려 잘 살 수 있는 다양한 나무들을 함께 심어 포도밭 전체를 하나의 '숲'처럼 건강하게 만드는 거예요. 서로가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돕게 만드는 게 퍼머컬처의 기본 논리예요.


그리고 생명역동농법은 일반적인 유기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라고 보시면 돼요. 화학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을 넘어, '별과 달의 움직임을 보며 짓는 농사'에요. 사람도 똑같은 날인 것 같아도 왠지 기분이 유독 좋은 날이 있듯이, 나무나 작물도 기운이 잘 맞는 날이 있거든요. 오랜 연구를 통해 별과 달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기운이 많은 날, 태양의 기운이 강한 날, 그리고 열매·이파리·뿌리에 좋은 기운이 깃드는 날들을 정리한 달력이 있어요. 저희는 그 달력에 맞춰 열매에 가장 좋은 기운이 차오르는 날 포도를 심고, 열매를 따고, 또 와인을 담급니다. 조금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결국 포도밭이라는 '작은 우주'가 거대한 자연의 질서와 리듬에 맞춰 스스로 숨 쉬게 해주는 농법이에요.



* 퍼머컬처농법 (Permaculture)

'Permanent(영속적인)' + 'Agriculture(농업)'의 합성어로, 자연 생태계의 원리와 패턴을 관찰하고 모방하여 지속 가능한 농사와 삶의 방식을 설계한다. 농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철학과 문화를 담고 있다.


* 생명역동농법 (Biodynamic Agriculture)

1924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된 이 농법은 농장을 단순히 작물을 생산하는 땅이 아닌, 논·밭· 과수·축사가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바라봅니다. 파종 달력에 따라 농사를 관리하고, 직접 만든 증폭제로 땅을 돌본다.


* 증폭제

생명역동농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중 하나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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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포도나무만 있는 밭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숲을 만드는 거군요. 실제로 밭을 둘러보면 닭과 거위도 자유롭게 다니고 있더라고요. 닭과 거위도 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이것도 퍼머컬처의 중요한 원리 중 하나예요. 퍼머컬처에서는 ‘밭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행위로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이로운 결과가 돌아와야 한다’라고 보거든요.


처음엔 닭똥을 얻으려고 닭을 데려왔어요. 밭에 닭똥이 참 좋은데, 항생제를 먹지 않은 순수한 닭똥을 구하는 게 워낙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키우기 시작했죠.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닭이 땅을 파헤쳐서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벌레도 잡아먹고, 건강한 알도 주고, 밭에 좋은 거름까지 남겨주더라고요. 하나의 행동으로 여러 이로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죠.


나중에는 거위도 데려왔는데, 거위 역시 밭에서 자기만의 역할을 해내며 우리에게 또 다른 기쁨을 줬어요. 게다가 농사만 짓다 보면 밭이라는 공간이 참 적막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동물이 돌아다니며 꼬꼬댁거리기도 하고 노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걸 보는 사람 마음까지 포근해지고 좋아져요.


나무와 사람, 그리고 동물이 함께 어우러져 숨 쉬는 모습을 보면서 ‘아, 동물이 이 공간에 들어온 순간 비로소 우리 밭이 하나의 완전한 생태계로 완성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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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내추럴하게

살아가는 방법




Q. 꽤 품이 많이 드는 농법인데요.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두고, 굳이 이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는 단순해요. 그게 가장 좋은 거니까요. 땅에도 좋고, 나무에도 제일 좋고, 농사를 짓는 나 자신에게도 좋고, 결국 우리 와인을 마시는 사람에게도 좋고요. 모두에게 좋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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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먼저 알아보는 토끼풀. 작은알자스의 밭은 온통 토끼풀로 뒤덮여 있다.
토끼풀은 땅을 덮어 흙을 보호하고, 땅속 미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작약밭을 걷어낸 뒤 지친 땅을 돌보기 위해 호밀과 함께 가장 먼저 심은 식물이기도 하다.




Q. 확실히 포도나무만 가지런히 자라는 일반적인 과수원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에요. 풀도 자라고, 나무도 섞여 있고, 동물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요. 농부님이 생각하는 ‘건강한 밭의 균형’은 어떤 모습인가요?


사람이 관리를 편하게 하려고 깨끗하게 잡초를 뽑고 정리하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이 보기에만 좋은 상태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무나 벌레, 수많은 생명체 관점에서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은 바로 '숲'과 같은 상태거든요.


자연 상태의 숲에 들어가 보면 겉보기엔 온통 무질서해 보이잖아요. 사람이 바라는 질서와 실제 식물이나 땅이 만족하는 상태는 전혀 다른 거죠. 재미있게도 저희는 그 자연스러운 '무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저희가 꿈꾸는 이상적인 밭은 동물과 사람, 그리고 작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숲과 같은 상태예요. 비록 포도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지만, 포도나무 곁에는 '친구 나무'와 다양한 식물들이 굉장히 많이 자라고 있어요. 그 수많은 식물이 서로 과한 것은 나누어 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며, 숲속에서처럼 서로 협력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게 바로 저희가 생각하는 가장 건강한 밭의 균형이에요.




Q. 말씀하신 ‘균형’을 만들려고 해도, 기후가 달라지면 그 균형 자체가 흔들릴 수 있잖아요. 특히 요즘처럼 날씨의 변화가 큰 상황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이런 변화에 작은알자스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저희는 비닐하우스를 치지 않고 노지에서 농사를 지어요. 온실은 사람이 온도나 습도를 제어할 수 있지만, 노지에서는 인간이 기후를 컨트롤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거든요. 결국 기후 변화에 맞춰 사람이 따라가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어요. 매년 달라지는 날씨를 보며 ‘왜 예전처럼 안 될까?’ 하고 앉아서 고민만 할 게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에 계속해서 반응하며 길을 찾아야 하는 거죠.


요즘 기후 변화로 사과 재배 가능 지역이 점차 북상하는 것처럼, 이 거대한 현상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해요. 만약 지금 땅에서 사과가 도저히 안 된다면 사과를 포기하고 그 기후에 맞는 다른 작물을 찾아 심거나, 꼭 사과를 고집하겠다면 기후를 따라 더 위쪽 지역으로 올라가는 식으로 적응해야 하거든요. 어떻게든 기후와 맞춰 살아가는 우리만의 방법을 찾아 나가는 거예요.


체감상으로도 최근 3년 사이에 매년 날씨가 너무너무 더워졌어요. 다행히 포도는 더위를 좋아하는 작물이라, 습도만 터지지 않는다면 충주에서는 사과만큼 충격적인 피해가 오진 않아요. 물론 저희 밭에 심은 사과나무 3분의 2 정도는 잘 안되고 있지만, 나무가 나이가 들며 좀 더 적응해 줄지 경과를 지켜보고 있죠.


농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작물이 자기가 서 있는 환경과 도저히 맞지 않으면 열매도 맺지 못하고 결국 죽어버려요. 그건 농부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거대한 자연을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기후 변화라는 흐름에 맞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시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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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연과 함께 짓는 농사는 때로 막막하고 불안한 순간도 참 많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오랜 시간 이 농법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나요?


이유는 아주 명확해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방식이 땅에도 좋고, 나무에도 좋고, 결국 인간에게도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잡풀만 가득하고 눈에 띄는 진척이 바로바로 안 보이니 고단하고 힘든 날도 많았죠.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밭이 조금씩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얻는 보람과 기쁨이 정말 컸어요. 그 변화들이 매 순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준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밭에 서 있으면 그냥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이 땅과 이 나무들이 참 소중하거든요. 사실 제초제나 농약이 가득 뿌려진 농장에 서서 그런 포근한 기분을 느끼기는 어렵잖아요. 저희는 아침에 일어나 밭으로 나가 맨발로 흙을 밟으며 걸어 다니는데, 그때 느껴지는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Q. 농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은 결국 이 밭과 자연에서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었네요. 그렇게 오랜 시간 자연의 흐름과 속도에 맞춰 살아오면서, 농사를 짓기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생각의 변화가 정말 커요. 농사를 짓기 전에는 농부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직접 땅을 일궈보니 농사가 제가 살아오며 해본 일 중 가장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자연의 흐름에 맞춰 제대로 농사를 짓는 건 훨씬 더 고된 일이라는 것도요.


그래서 이제는 아주 작은 농산물 하나를 마주해도 감사함이 먼저 들어요. 밥상 위에 올라오는 먹거리를 절대로 가볍게 여기거나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는 마음이 깊게 자리 잡았죠. 또 도미니크와 함께 이런 농법으로 땅을 가꾸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해서도 다르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의 저는 그냥 일반 소비자였으니까, 돈만 주면 뭐든 손쉽게 구할 수 있으니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는 우리 밭뿐만 아니라 지나가는 다른 밭의 땅 상태는 어떤지 유심히 보게 되고,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자연스럽게 '농부의 시선'으로 세상을 읽어내게 된 거죠.


그렇다고 예전 도시에서의 삶이 불행했다거나 지금이 훨씬 더 즐겁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 시절에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나름대로 충분히 즐기며 잘 보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전혀 없거든요. 지금은 '농사'라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 안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으며 힘들지만 나름의 깊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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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숲이 
한 잔의 와인에 담기기까지




Q.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은알자스에서는 밭뿐만 아니라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통제’와 ‘자연스러움’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와인을 만들다 보면 예상했던 것과 다른 결과를 마주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런 변화를 농부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내추럴 와인이라고 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에요. 첨가물이나 화학 약품으로 맛을 강제로 통제하지 않을 뿐이죠. 대신 와인이 건강하게 잘 익어갈 수 있는 조건, 예를 들어 온도나 청결 같은 환경을 세심하게 관리해요. 


사실 와인이 완전히 상해서 썩거나 식초처럼 변해버리는 것과, 포도의 성향이나 그해 기후가 달라 맛이 조금 다르게 나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예요. 매년 조금씩 다른 맛을 보여준다는 점이야말로 내추럴 와인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거든요. 똑같은 사람이라도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조금씩 다르듯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매 순간 조금씩 변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포도나무와 와인도 마찬가지예요. 공장에서 나오는 맥주나 소주는 맛이 달라지면 불량이고 사고지만, 와인은 맛이 조금씩 바뀌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즐거운 요소예요.





Q. 자연의 흐름을 존중하며 농사짓듯 와인도 만들어 오셨는데요. 작은알자스 와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풍미가 있을까요?

저희 와인은 포도가 가진 품종 본연의 성향과 맛을 아주 정직하게 드러내요. 인공적인 발효효모를 집어넣지 않고, 밭에서 자연스럽게 포도 껍질에 붙어 온 자연 효모만으로 발효를 진행해요. 살아있는 균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미지의 맛’인 셈이죠. 발효를 거치고 나면 정말 산뜻하고 순수한 포도 본래의 풍미가 고스란히 살아나요.


캠벨은 캠벨 특유의 맛이, 머루는 머루만의 매력이, 각 포도가 가진 매력이 그대로 와인에 드러나요. 과일이 가진 본연의 순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저희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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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포도의 맛과 향이 그대로 담긴다고 하시니, 술을 마시지 못하는 저도 어떤 맛일지 상상이 되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가장 잘 어울리는 추천 와인, 그리고 작은알자스의 와인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농부님만의 팁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땀을 뻘뻘 흘리는 무더운 여름날에는 로제 와인이나 시드르가 정말 잘 어울려요. 개인적으로 시드르를 정말 좋아하는데, 날이 더워서 약간 무기력하고 입맛도 없을 때 시드르를 딱 한 잔 마시면 마음이 깊이 위안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사과가 발효되면서 나오는 특유의 편안함과 산뜻함이 있어요.


다만 시드르는 처음 접하는 분들이 곧바로 ‘맛있다!’ 하고 느끼기는 아주 쉽지 않을 수도 있어요. 보통 사과주라고 하면 달콤하고 사과 향이 퐁퐁 풍기는 음료를 기대하시곤 하는데, 저희 시드르는 슴슴하고 편안한 맛에 가깝거든요. 일종의 '평양냉면' 같은 매력이랄까요?


이 슴슴하고 정직한 맛에 한번 익숙해지고 맛을 들이면 나중에는 계속 찾게 되는 묘한 현상이 생겨요. 저는 술을 별로 안 마시고 싶은 날에도 물 대신 시드르를 마시곤 하는데, 그러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요.




Q. 오늘 나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작은알자스의 와인은 단순히 포도로 만든 술이라기보다, 풍요로운 밭이 통째로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작은알자스의 와인을 마시는 분들이 이 한 잔을 통해 무엇을 느끼거나, 무엇을 한 번쯤 떠올려주셨으면 하나요?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건, 결국 땅의 풍요로움과 시간을 함께 마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 생과일을 먹을 때는 ‘농부님이 농사를 참 잘 지으셨다.’,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지만, 와인은 한 번 가공된 술이다 보니 만드는 농부나 땅의 존재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와인 역시 땅과 농부가 정성을 다해 일궈낸 농사의 정직한 결실이거든요.


그래서 작은알자스의 와인을 마실 때, 이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땅이 품어낸 시간과 농부의 손길을 한 번쯤 떠올려 주신다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할 것 같아요.


물론 마시는 분들에게 이런 생각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편안하게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문득 ‘이 포도는 어떤 땅에서 자랐을까?’, ‘이 한 잔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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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와, 또 나도 모르게 효율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움직이게 될 때면 문득문득 충주 작은알자스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작은알자스의 두 농부는 더 빨리,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 자연의 시간을 앞당기지 않았다. 대신 땅이 회복될 시간을 기다리고, 나무가 자랄 시간을 내어주고, 자연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시간은 열매가 되고, 와인이 되고, 마침내 지금의 숲이 되었다.


어쩌면 우리 삶에도 아직 열매를 맺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디게 가고 있는 것 같아도, 당장 눈에 보이는 결실이 없어도 그 시간 속에서는 무언가가 자라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시간을 아끼는 일이 아니라 무엇인가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 <마르쉐@와 지구농부> 전시는 파타고니아의 1% for the planet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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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알자스_도미니크&신이현 농부(↗)

프랑스에서 온 양조인 도미니크와 소설가 신이현이 퍼머컬처와 생명역동농법을 기반으로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입니다.
와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이며, 농부는 과일나무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함께 키운다는 마음으로 농사짓습니다.
포도나무와 다양한 작물이 함께 자라며 부족한 것을 주고받으며 서로 공존하는 숲과 같은 포도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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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쉐X파타고니아 지구농부프로젝트(↗)

마르쉐X파타고니아는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다시 흙 속으로 돌려보내는 '재생유기농사'를 응원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농사를 지향하는 농부들을 지구 생태계를 돌보는
'지구농부'라고 일컬으며 함께합니다.

'지구농부'들의 토양을 되살리는 농업이 기후위기 시대의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마르쉐와 파타고니아는 토양을 회복하고 지구를 살리는 재생유기농업 등을 응원하며
2021년부터 지구농부시장, 지구농부여행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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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어가는 연대, 내일을 위한 작은 날갯짓 [농부의 숲] (↗)

농부시장 마르쉐는 시민들과 함께 '농부의 숲'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재생농업으로 토양을 회복하는 농부를 응원하고, 시민들의 후원과 참여를 통해
농부의 밭을 다년생 먹거리숲으로 가꾸어 나가고자 합니다.

지난 2025년, '농부의 숲' 캠페인을 위해 마리끌레르, 사람엔터테인먼트,
농부시장 마르쉐의 음식 시민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조경가와 연구자, 커뮤니티 그룹, 기획자, 액션 그룹 등 각계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총 347명의 마음이 모였고 572그루의 나무와 8,019촉의 모종을 심는 결실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날갯짓은 계속됩니다.
농부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함께 숲을 일굴 시민과 기관·기업의 참여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