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24년 1월] 일본 가미야마 답사기 ⑦ 가미야마의 성공 요인 : 우발성 디자인의 요소 <바람의 사람 x 흙의 사람>


가미야마 둘째 날 점심, 푸드허브 프로젝트의 레스토랑인 가마야에서 정식을 먹었다. 엊저녁은 환영 만찬이었던 터라 특별 메뉴가 준비됐고, 가마야 레스토랑의 본격적인 정식 메뉴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가마야의 정식은 일주일 동안 같은 메뉴가 제공되며,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개발한 메뉴라고. 민어로 끓인 수프가 속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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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야 레스토랑의 정식과 메뉴판 (24년 1월 18일~1월 24일)


이 점심은 아주 특별한 분과 함께 하게 됐다. 바로, 그린밸리(↗)의 설립자 중 한 명이자 마루고토고등전문학교의 전무이사로 계신 오오미나미 신야(大南信也) 선생님이다. 가미야마의 성공 요인이 무엇일까? 연수를 떠나기 전, 가미야마 이야기를 담은 책 내용을 함께 공부했다. 시라모모(행정), 푸드허브(농업), 스마(빈집 개조 및 건축), NPO(교육) 크게는 이렇게 4가지 분야가 활약하게 된 것만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유기적인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연결해 주고 맥락을 공유하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지표를 보여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아닐는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대단한 리더십과 열정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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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미나미 선생님의 강연은 가미야마 이주문화교류지원센터가 자리한 가미야마 연대공사 건물에서 진행됐다. 다이치 마나베 씨가 얘기하기를,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2023년 제안받은 수많은 강연 중 수락한 강연이 딱 2건이라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 연수팀이라고 했다. 수강생으로서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중요한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다른 한 팀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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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성의 디자인] 인구 5000명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쵸는 왜 진화를 계속할 수 있었는가?


인구 5,000명의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초는 왜 진화를 계속할 수 있었는가?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가미야마의 성공 요인을 “우발성의 디자인”이라고 표현했다. 즉, 행운이 크게 작용하게 됐다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운도 실력이고, 기회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다. 지금부터 가미야마가 어떻게 인구소멸 위기의 시골 마을에서 동아시아에서 주목받는 지역 성공 사례가 됐는지, 오오미나미 선생님의 강연을 요약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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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NPO 그린밸리 설립


“창조적 과소”를 위한 “광용한 토양 만들기”와 NPO그린밸리

도쿠시마현 가미야마쵸는 인구소멸을 향해 가는 시골 마을이다. 지리적으로, 수도인 도쿄로부터 비행기로 1시간 30분, 다시 차량으로 1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변방이다. 면적은 서울의 약 3배, 그중 삼림이 83%를 차지한다.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있다. 정부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구는 50년 전의 1/4 수준. 이대로 2026년까지 간다면, 또 1/4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곳에는 대기업, 공장, 관광지, 철도, 고속도로가 없다. 

경제 활성화도 인구 증가에도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재라는 요소를 빠르게 파악하고 취할 수 있었다. 이곳에 필요한 인재는 주어진 조건이나 그 조합으로 새로운 물건이나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였고, 그러한 창의적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광용한 토양 만들기”가 큰 과제가 됐다. 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2004년 설립된 것이 “NPO그린밸리”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창조적 과소”다.


💡 창조적 과소(Creative Depopulation)란?
인구가 점점 소멸해가는 경향(과소)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내용을 창조적으로 바꾸어 지역과 마을이 지속가능하게끔 바꾸어보자는 것. 단순히 인구수를 늘리기 보다 세대나 성별의 비율을 바꾼다든가, 마을주민의 직업군을 다양하게 바꾼다든가 하는 것이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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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야마 지역 활성화 5단계
*일본 외무성에서 번역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일부 오류가 있다. 본문 사진 아래의 소제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0.0단계 (1991) | 앨리스 귀향 운동과 국제교류 활동을 통해 지역을 위해 뜻을 모은 마을 청년

가미야마의 오늘은 “앨리스 귀향 보내기 프로젝트”가 태동이었다. 앨리스는 1927년 미국이 일본에 친선의 의미로 전달한 12,739개의 인형이다. 당시 이 인형은 일본 문부성(교육부)을 통해 각지로 전달됐고 지역민들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1941년 미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사람들의 미국을 향한 분노는 앨리스 인형을 폐기하는 것으로 표출됐다고 한다. 이 위기를 넘긴 앨리스 인형은 단 320개, 그중 하나가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다녔던 가미야마의 한 초등학교에 보관돼 있었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앨리스 인형을 다시 만난 것은 1990년, 자녀가 그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다. 앨리스 인형의 만듦새는 매우 정교했다. 미국인들은 놀랍게도 일본으로 건너올 당시 인형에게 여권까지 만들어주었다. 여권상 앨리스 인형의 주소는 펜실베이니아주, 그때 당시 인형의 나이를 계산해 보니 이미 70을 넘긴 나이, 사람들은 과연 인형을 만든 사람이 아직 생존해 있을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편지를 보냈더니, 6개월 후 앨리스의 원래 주인이었던 한 할머니의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제 이 앨리스를 고향으로 보내자, 할머니를 만나게 하자는 것으로 옮겨갔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38세이던 1991년, 30명의 방문단이 꾸려졌다.

이 일에 앞장선 4명의 청년에게는 작은 변화가 일었다. 각자 조금씩이라도 우리 지역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1.0단계 (1999) | 아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ICT(정보통신기술) 인프라 구축

가미야마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은, 1999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rtist in Residence) 프로젝트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트 인 레지던스는 1년에 3명의 예술가를 뽑아 2달 동안 가미야마에 머물며 작업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관광 자원(볼거리)이 없던 가미야마에 예술 작품이라는 볼거리를 남기게 된다. 외부인들이 환대받고, 그들의 작업물이 마을 곳곳에 쌓이면서 이곳에 정착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관광객도 늘어갔다.

2005년에는 일본 전역에 광케이블이 설치되면서 인터넷 통신 환경이 좋아졌다. 가미야마는 특히 인터넷 사용 인구가 적기 때문에 더 빠른 속도의 통신 작업이 가능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일본의 총무성(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성격)의 지원금이 투입됐다. 이 지원금은 “인 가미야마(In Kamiyama, https://www.in-kamiyama.jp/en)”라고 하는 지역 정보 사이트를 개설하고 유지하는 데에 쓰였다. 톰 빈센트라고 하는 영국인은 “인 가미야마” 사이트에 가미야마에서 펼쳐지는 프로젝트라든가 빈집이나 숙박 정보를 올려 일본은 물론 해외에 가미야마를 알리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지역 창생을 위한 정책은 증폭제가 됐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도 광케이블과 정부 지원금으로 만든 웹사이트만 있으면 과소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고 한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단지 하드웨어만 갖춰져서는 같은 결과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가미야마가 달랐던 점은 일찍이 “아트 인 레지던스”라는 콘텐츠를 성공시켰다는 데 있다. 톰 빈센트라는 영국인이 열정을 보인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다.

1.0단계,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졌다. 10년 가까이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사실, 정리하려고 보니 1.0단계 2.0 단계이지, 오오미나미 선생님 혼자만의 말과 글로 다 정리하지 못하는 1.1단계, 1.5 단계들을 숱하게 지나왔을 것이다.


2.0단계 (2008) | 워크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이주민/기업의 유입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2008년에는 워크 인 레지던스(Work in Residenc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통, 지역이 살기 좋기로 소문이 나면 이주민들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가미야마는 발상을 전환하여 “역지명”을 생각해냈다. 역지명이란, 지역에 필요한 직업군을 찾아서 이주 신청을 받고 그들에게 레지던스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주민들의 공급이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빵집이나 디자이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을주민들의 수요와 맞춰지는 새로운 시도였다. 아직 작은 가미야마였지만 지역 내 경제 순환이 활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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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 인 레지던스를 활용한 상점가 재생 | 상점가에 지역에 필요한 직업군과 상점이 자리잡았고, 작은 경제순환이 창출됐다.


“인 가미야마” 사이트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0년이 되던 해, 뉴욕에 살던 일본인 건축가 반도 코스케와 그의 아내가 “인 가미야마”에서 소식을 접하고 가미야마에 이주해왔다. 가미야마 마을의 건축은 반도 부부와 함께해 나갈 수 있게 됐다.

마을에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직업군을 역지명 할 수 있게 되자, 레지던스 프로젝트는 “크리에이터 인 레지던스(Creator in Residence)”로 확장됐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디자이너, 카메라맨, 영상 작가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이곳에서의 삶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주목받았던 “워케이션(Work + Vacation, 일과 휴식의 합성어로,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 일상의 휴식을 취하며 인터넷 통신을 활용해 일을 할 수 있는 형태의 삶)” 모델이 가미야마 버전으로 만들어졌다.

영국인 톰 빈센트는 가미야마에 자신의 사무실을 갖기를 원했고, 빈집을 개조해 사무실을 열게 됐다. 이 사무실의 이름은 “블루베어 오피스 가미야마.” 이 소식 역시 “인 가미야마” 사이트를 통해 전파됐다. 그리고 곧, 가미야마는 창조적 과소에 속도를 내게 된다.


3.0단계 (2010) | 위성사무소(새틀라이트오피스 Satellight Office)의 등장과 코워킹오피스(Co-working Office)의 설립과 창조적 인재 유입

“크리에이터 인 레지던스” 프로젝트는 새로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을 했다. 건축가인 반도 코스케 부부의 지인인 뉴욕 출신 일본인 건축가 스마 씨가 가미야마에 합류했다. 건축가들은 새롭게 마을을 설계했다.

2010년 8월부터 10월까지 2개월에 걸쳐, 방직공장이던 곳이 900만엔(우리 돈 약 9,000만원)을 들여 코-워킹-오피스(Co-working Office, 공유 오피스)로 탈바꿈했다. 이제 워케이션을 꿈꾸는 이는 누구나(주로 IT 업계 근무자) 가미야마에 와서 제대로 된 업무환경이 갖춰진 공유 오피스를 빌려 일할 수 있었다.

코-워킹-오피스가 한창 리모델링 공사 중이던 9월, 건축가 스마 씨의 지인인 데라다 씨에게 가미야마의 소식이 전해졌다. 데라다 씨는 미쓰이 물산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면서 그곳의 자유로운 업무환경에 반해 상산(Sansan, https://jp.corp-sansan.com/)이라는 IT 기업을 창업한 인물이다. 데라다는 곧바로 가미야마에 새틀라이트오피스(Satellite Office, 위성사무소)를 추진했다. 얼마나 추진력이 강력한지, 9월 25일에 계획했던 위성사무소가 10월 14일에 개소했다. 1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소문은 매스컴을 타고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11월에는 전국으로 송출되는 유명 방송사에서 취재했고, IT업계의 청년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노트북을 하는 사진이 가미야마의 상징처럼 곳곳에 비쳤다. 이번에는 기업인 스미다 씨에게 소식이 닿았다. 그는 빈집을 개조해 TV 송출 업체인 ‘엔가와’의 위성사무소를 세웠다. 디지털 영상 프로덕션 기업인 플랫이즈의 위성사무소도 생겨났다. 평이 좋고 인기 많은 프렌치 레스토랑이자 스테이인 ‘오니바’가 들어섰다. 아일랜드 출신 마노스 씨는 수제 맥주 공장을 열어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 우리를 이곳까지 초대한 푸드허브 프로젝트도 이 시기에 가미야마 위성사무소를 열었다.

새로운 창조적인 인재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계획을 현실화해 나갔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이 “우발성의 디자인”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단지 이 모든 것을 우발성이라고 하기에 부족하다. 마을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만큼이나 외부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과 환대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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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창생전략 프로젝트


4.0단계 (2015) | 가미야마 지역창생 전략과 푸드허브 프로젝트의 등장

지금까지 가미야마의 변화가 풀뿌리, 즉, 민간의 주도였다면, 2015년부터 “지방창생 전략”이 본격적으로 도입돼 민관이 함께 이끌어나가게 된다. BAU(Business As Usual) 시나리오라고 해서 “2015년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2050년, 2060년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라는 것을 떠올리며, 안 좋은 결말을 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 4.0단계의 출발이었다. 그린밸리가 내린 작은 결론은 “사람이 머물러야 한다”는 것!

사람이 머무르기 위해 지역의 중심 산업이 필요하다. 농사를 기반으로 식농 프로그램 설계와 사업이 가능한 푸드허브 프로젝트가 들어왔다. 쉐프 인 레지던스 프로젝트에 이어, 급식소 운영과 지역 산물을 이용한 가공식품 개발, 유통까지 순조롭게 진행됐다.

순환 경제, 경제활동이 가능해지자 이제는 이주 인구가 아니라 정주 인구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마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최소 사이즈를 3,000명으로 잡았다. 그래야 초등학교가 합쳐지지 않고, 학년별 학급이 유지된다. 현재의 급속한 고령화, 인구과소화 속에서도 이 규모를 유지하려면, 자녀가 2명 정도인 가족이 한 해에 5가구씩 유입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세워졌다. 2000년대 중반 도쿠시마대학과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함께했던 이 작업에서 결국 ‘창조적 과소’는 개념을 넘어 구체적인 목표이자 현실적 지표가 됐다. 자녀가 적어도 2명 되는 가정이 정착하려면 육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공동주택 단지가 지어졌다.

그리고 자녀가 교육의 빈곤으로 인해 타지역으로 이주해 가지 않도록, 그래서 인구수가 유지되도록, 훌륭한 교육시설이 필요했다. “그래, 다음은 학교지!” 상산의 위성사무소를 1개월 만에 뚝딱 설립한 데라다 씨의 아이디어로 교육 기관 설립 현실화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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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고토고등전문학교 외경
(학교 홈페이지(↗)SNS(↗)도 있으니, 함께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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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고토고등전문학교 1기 입학식 (2023. 4. 2)


5.0단계 (2023) | 백년지대계, 고등교육 기관인 마루고토고등전문학교 설립

2023년 마루고토고등전문학교가 개교했다. 고등학교 3년, 전문대학 2년이 합쳐진 5년제 교육기관이며, 한 학년 정원 40명, 전교생은 200명이다. 일본에서도 가장 작은 규모의 학교지만, 이 학교는 자부심을 갖고 내세우는 것이 여럿 있다. 테크놀로지, 디자인, 기업가 정신이라는 3가지 교육 커리큘럼도 그중 하나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기업가 정신을 고등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일본 내에서 최초일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이런 시골 마을까지 누가 올까 다들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40명 정원에 일본 전역과 멀리 영국에서까지 총 400명이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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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립 자본금 37억엔은 기부로 이뤄졌다. 기업은 고향납세 제도를 활용했다. 


학교 건립에 필요한 자본금은 37억 엔(우리 돈 약 370억 원) 이상 모였다고 한다. 기업들이 선뜻 기부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고향사랑기부금과 비슷한 “고향 납세”라는 제도가 일본에 있는데, 기업이 학교에 10억엔을 기부하겠다고 하면 실제로는 1억엔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고향 납세” 기금에서 충당되는 방식이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5700만 엔 정도가 모였다. 선배도 모집했다. 1인당 3만엔을 내면 “선배자격증”을 발급하는 식이었는데, 이틀 만에 1000명 모집이 마감됐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자본금은 학교 공사비로 사용됐다.

학교 운영에도 비용이 든다. 학생 1인당 연간 200만 엔의 학비와 100만 엔의 기숙사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학교의 학비는 전액 무료다. 단, 기숙사비와 식비 등 생활비는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연봉의 1/10 정도를 부담한다. 물론 연봉 40만엔 이하 가정의 경우는 생활비도 전액 지원한다. 학비를 받지 않고도 좋은 교사진과 시설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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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고토 학교에 장학금을 출자한 11개 기업


가미야마에 첫 위성사무소를 냈던 상산(Sansan Corp.)의 대표가 앞장서서 학교와 미래세대에 투자하라고 기업들을 설득하여, 11개 기업으로부터 100억 엔을 출자받았다. 우리가 잘 아는 소니, 후지츠, 소프트뱅크, 로토 등의 굵직한 기업들이 이 학교의 주주가 된 셈이다. 그리고 학교는 현재 그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학교에 투자한 기업은 학생들과 1:4로 장학생 매칭이 된다. 학생들은 5년 동안 기업의 장학생 타이틀을 유지하고, 방과 후 시간에 기업의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행할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5년 후, 마루고토 학교의 학생 수는 250명이 된다. 이들은 모두 가미야마 주민으로 편입된다. 250명, 가미야마 쵸 인구의 5%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다. 마루고토 학교와 학생의 전입이 불러온 변화는 앞으로 5년 동안 유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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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야마쵸 연령별 전출입 인구 | 2019년 기준 5년 동안의 변화를 보면, 15~19세 인구 유입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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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야마 쵸 인구 변화 (2021년 vs 2023년)
2021년에는 이주인구가 증가했음에도 인구구성 중 고령자의 사망이 더 커서 전년동월 대비 5명의 감소를 보였다.
2023년에는 마루고토 학생들의 전입으로 인해 전년동월 대비 47명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2년 동안 전체 인구는 1% 증가했고, 평균연령은 0.3세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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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성 디자인의 요소 : 레지던스 사업의 다면적 전개 (계획)

b4a0fcace1da5.png우발성 디자인의 요소 : 바람의 사람 x 흙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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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발성 디자인의 요소 :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다면적 전개 → 다양한 인재 → 관계인구 형성 → 우연의 작용과 현실화


마루고토 학교 이야기와 함께 오오미나미 선생님의 강연이 절정을 향했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이주 인구를 “바람의 사람”, 정주 인구를 “흙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바람의 사람”은 외부의 흙이나 먼지, 씨앗을 품고 와 떨어뜨리고 간다. 정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품고 틔우는 역할을 하는 것일 테다. 시작부터 줄곧 가미야마의 성공은 “우연과 행운”에 의한 “우발성 디자인”이라고 설명한 데 대한 부연이었다. “우발성”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우발성이 아니었던 것은 단 한 가지, “레지던스 사업”이라는 콘텐츠를 계획했던 것이다.

지역을 위해 역할을 하고자 하는 청년의 뜻이나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시기가 잘 맞았던 것, 새로운 인재들이 새로운 기획을 구상하고 현실화했던 것까지는 계획할 수 없었다고 치더라도, 이 모든 것이 우연과 행운이라니! 1999년 시작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25년 동안 성장하여 창조적 과소도 해냈고 지역 창생도 해내고 있는데! 오오미나미 선생님은 25년을 어떻게 지켜보았을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꾸준한 믿음의 근원은 무엇일까? 또, 기업들은 어떤 이익이 있기에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에 큰 투자를 했을까, 그것도 아주 여러 기업이? 우리와 비교되는 지점이 보이면서, 그들의 믿음과 추진력이, 기업가 정신과 행정가의 지원이 부러웠다.

함께 강연을 들은 언덕(이보은)은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동안 지역 창생에 힘을 쏟았다는 생각이 든다. 놀랍다”고 했다. 외침을 한 번도 받지 않았기에 지역의 자연 자원과 문화자원이 잘 보존돼 있는 특징에 더해, 이렇게 지역 창생 전략 덕분에 각 지역이 성장했다. 무역수지와 금리와 환율에 가려져 있던 일본의 실체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나의 파이를 키우지 않고, 파이를 쪼개서 각자 키웠다. 호황기에 일본은 더욱 놀라운 성장을 보여줄 것 같다. (한편으로 배 아프다!)


❓ 질의응답

Q. “바람의 사람”과 “흙의 사람” 사이의 갈등은 없는가?

A. 갈등은 어디에나 늘 있다! 우리에게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설득하며, 시간이 지나 바람의 사람들에게 적응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주: 다음날 우리는 지역 상점가 한 가게의 나이 든 부부를 취재했다.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가미야마를 변화시킨 것을 실감하느냐?”는 질문에, 이 땅에 줄곧 살아온 그들은 “그와 원주민 사이의 교류는 많지 않으며, 그가 일으킨 변화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다, 창조적 과소의 대상은 미래세대와 미래세대를 양육하는 50세 이하 청년세대일 터. 고령인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벚꽃이 필 때 젊은 사람들이 더 찾아오고, 어느 주말에는 길 건너 호프집이 시끄러운 정도일 수도 있겠다. 원주민과 노년을 위한 정책은 창조적 과소와 별개로, 그들을 존중하며 이뤄져야 할 것이다.)


Q. 지속가능한 마을의 인구 사이즈를 3,000명으로 설정한 까닭은?

A. 초등학교 1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마을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지방창생전략을 세울 당시인 2007년도 그래프다. 2005년 인구통계자료를 근간으로 0세~14세 인구를 추정한 것이다. 2010년도 초등학생 수가 28.9명, BAU시나리오대로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2035년에는 12.5명으로 줄어든다고 예측했다. 초등학교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학생 수가 최소 20명은 유지가 돼야 한다. 예측한 학생 수와 8명 정도의 차이가 난다. 학생 수에 집착한 이유는, 부모 입장에서 학교가 없으면 자녀의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나가버리고 그러면 인구과소는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6세 4세 자녀를 둔 젊은 부부가 매년 5가구 이상 유입돼야, 학년 당 학생 수가 10명씩 생겨나고 8명의 차이를 메꾸고 20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를 근거로 마을의 인구사이즈를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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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과소를 위한 BAU시나리오.
2007년 기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0세~14세(빨간색은 초등생)의 인구 예측.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2035년 초등생 수는 2010년 초등생 28.9명의 절반 이하인 12.5명이 된다.
적어도 8명 이상의 초등생이 해마다 유입돼야, 초등생 20명을 충족한다. 이 계산은 도쿠시마대학과 함께 오오미나미 선생님이 직접 했다고 한다. 


Q. 고등전문학교를 세운 이유는?

A. 결론적으로 2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선택지가 더 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맨 아래 녹색은 중학생이 졸업하는 수. 그중 일반고와 공업고, 상업고 등 전문고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다시 전문학교, 대학교, 사회인의 진로 설정이 가능하다.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면, 추가 교육 없이 전문학사 취득이 되고 바로 사회인이 되므로 취업을 할 수도 있고, 개인의 선택에 따라 대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공부를 더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한 가지 이유는 5년 동안 14세~19세 인구의 유입과 유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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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졸업 이후의 선택지, 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할 수도 있고, 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Q. 다양한 창조적 인재의 유입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느냐?

A. “플랫”을 생각한다. 평평하다, 동등하다는 의미다. 아무리 재미있고 유능한 사람을 발견하더라도, 제발 우리 마을에 와서 살아주시면 안 될까 하는 식이 애원하며 잡거나 부탁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항상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효과적이다. 물론, 쉽지 않다. 특히 행정가들은 “꼭 우리 마을에 와서 살아주십시오”하고 말한다. “지원금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한다. 지원금이 깔리는 순간부터 관계는 대등하지 않다. (*글쓴이 주: 객관적으로 매력을 보여주자는 이야기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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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마르쉐친구들 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