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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지 vol.2> 봉금의 뜰, 농사짓는 일상에서 찾는 기쁨 _3/4

 

 

채소지
채소를 알고 기록하는 곳

똑같은 채소라도, 농부마다 수많은 채소의 맛이 있습니다.
채소지에는 채소를 키우는 농부의 삶과 농사 이야기를 담습니다.
흙과 풀과 벌레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하나의 숲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그곳에, 그 숲에서 자라나 지금 가장 맛있는 채소가 있습니다.
그 농부만의 특별한 채소 맛을 전합니다.

생명을 돌보는 농사, 봉금의 뜰
세 번째 이야기

 

지금껏 해온 일 중에 농사가 제일 좋아요.
농부가 되니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지지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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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살아있는 생명을 만나고, 생명이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농사가 좋아요. 지금껏 해온 일 중 농사가 제일 좋은 것도 그래서예요. 귀농하기 전에는 기대처럼 안 되는 일, 많이 애써도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아서 지쳤었거든요. 농사는 변수가 많아 안 그런 것 같아도, 내가 노력하는 만큼 반응하고 정성을 들인만큼 돌려줘요. 그 생명의 반응이 너무 좋아요.

 

어떨 때는 농사가 참 힘들다가도, 어떨 때는 농사로부터 다시 위로를 받지요.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지지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한번은 우리농에 공급하던 깻잎이 저온 상해를 입어 일찍 꽃이 피어버린 적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팔 수가 없어서 농사지은 땅을 엎어야 했는데, 정성스레 농사지은 깻잎을 하나하나 제손으로 뽑아야 하는 게 너무 마음 아팠죠. 그때 지역에서 가톨릭농민회 활동 함께하며 분회장을 맡고 있는 최요왕 농부가 와서 묵묵히 도와줬어요. 같은 지역에 사는 김단 셰프는 그 깻잎을 한밭 통째로 가져가서 올리브 오일에 담가 맛있는 페스토를 만들어줬구요. 이렇게 지역에서 함께해주는 분들이나 가톨릭농민회처럼 농민과 농민, 농민과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그룹이 있다는 것이 제게는 참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데, 이제는 마르쉐도 함께 있네요.

 

농부로서 꿈이 있다면, 앞으로도 지금처럼 농사가 계속 좋다는 말을 하며 살고 싶어요. 지난 겨울에 젊은 친구들이 마을 할머님들을 위한 한글 교실을 열고, 그 기록을 우리집에서 전시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좋아 전시물들을 아직도 그대로 두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할머니들의 손글씨와 ‘구름’이라는 친구의 판화 작업을 더해서 달력도 만들었어요. 그 달력도 너무 좋아 12달 낱장을 다 떼어서 벽에 붙여두었어요. 언젠가 저도 그 달력에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달력에 그려진 농부 할머니들처럼 나이 들고 싶어요. 그러면 아마도 제가 지금 마을 할머님들의 후계자가 되겠지요. 얼마 안 남았으니 가능하겠죠?

 

 

농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고민 돼요.
안 그래도 힘든데, 재미가 없으면 안돼죠. 농사는 재밌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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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해본 일 중에 농사가 제일 좋지만, 춘궁기를 겪는 것처럼 계속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도 들어요. 작년에 연 1,800만원 벌었는데 이 정도 금액이면 주변에서 굉장히 많이 번 편이라고 해요. 그럼에도 투입이 많으니 남는 건 많지 않죠. 순수익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계산 못 해봤어요. 농촌에 살면서, 특히 이 마을에 살면서 돈이 아닌 것들로 채워지는 게 많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현금도 만들어야 하니 고민이죠.

 

농사를 계속 짓기 위해 이 집으로 이사오느라 빚도 생겼는데 그 빚을 계속 늘릴 수도 없구요. 수입을 당장 크게 늘릴 수 없다면 제가 좀 더 잘 생각해서 유류비나 통신비 같은 소비를 줄여야 하는데, 지금은 밭이 여기저기 있다보니 자꾸 자동차를 쓰게 되고.. 쉽지 않더라고요. 농사를 계속 짓고 싶지만 경제적 문제, 농지 문제 때문에 농사를 지속할 수 있을지, 지속하더라도 이곳에서 지속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이에요.

 

제가 농부라는 걸 확인해줄 사람은 1천 명쯤 되지만, 제 소유 땅이 없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제가 농부라는 게 증명이 안 돼요. 농지를 빌려준 분들은 직접 농사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가진 게 드러나면 안 되기도 하고, 그분들의 재산권 문제도 얽혀있으니 제가 농사를 대신 지어주길 바라지만 정작 그분들 땅을 통해 제가 농부라는 증명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서 농민과 관련된 지원도 전혀 못 받아요. 친환경 인증을 받는 것도 제가 농부라는 게 증명되면 인증 비용 등을 다시 지원받아 돌려받을 수가 있는데, 그런 보장이 아무것도 안되는 거죠. 내가 농부지만 농부가 아닌 거예요.

 

한국의 유기농 인증은 농사 과정이나 농민에 대한 인증이 아니라 땅과 작물별로 일일이 인증을 받아야 해요. 반면 유럽에서는 이 농부가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과정이 인증되면 어느 밭에서 무엇을 길러도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 있어요. 한국은 같은 밭이라도, 이쪽 고랑에 고추 10주 심고 저쪽 고랑에 상추 10포기 심으면 다 따로 인증을 받아야 해요. 다음 해에 연작 안하려고 배치나 작물을 바꾸면 또 새롭게 다시 인증을 받아야 하고요. 인증 절차나 비용의 장벽이 있다보니 저같은 다품종 소량 생산 농부들은 매번 인증 받기가 참 어렵죠. 특히 저는 단일 작물을 크게 심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재미가 없으니까요. 농사가 안 그래도 힘든데, 재미가 없으면 안돼요. 농사는 재밌게 해야 해요.

 

 

내가 어떻게 하는게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하는 거니까,
너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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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고 두번째 해쯤, 깻잎 농사지을 때 응애가 너무 안 잡혀서 잠도 못자고 그랬어요. 응애 때문에 혹시나 결품이 되면 납품하는 곳과의 신뢰가 깨질까봐 전전긍긍했었죠. 정말 많이 고생했었어요. 그때 살도 정말 많이 빠졌죠. 지금은 그런 걸 조금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그때는 농사지으며 자연과 함께 산다고 말하지만, 내가 자연을 어떻게 하려고만 했었던 거죠. 나도 자연의 일부인데. 자연스럽지 않았던 거에요. 모든게 완전하게 잘 될 수 없는데, 애쓰면 애쓴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거죠. 시민단체 활동가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내가 이렇게 했으면 어느만큼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여유가 없었죠. 그 마음을 이제는 많이 내려놓았어요. 내가 자연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까요.

 

전에 이 지역에 가공공장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토마토를 엄청 많이 심었는데 비가 너무 안 와서 그 밭을 그만둘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토마토들이 자기가 알아서 살더라고요. 가뭄 속에서도 자기가 알아서 버텨주는 거예요. 그걸 보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알아서 하는구나, 작물들이 다 하는데 너무 애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만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는 거죠. 다행히 주변 농부들도 늘 도와주러 와주니, 농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지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농사가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녹록치 않아도 계속 땅을 살리는 생명농사를 짓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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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지금처럼 농사가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땅을 많이 망가뜨리거나, 더 더럽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농사짓는 게 어렵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어요. 화석연료를 많이 쓰지 않고, 동력을 많이 쓰지 않고 농사짓겠다는 지향이죠. 제가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단작하면 이런 방식으로 농사짓기 힘들거든요. 저는 아이도 없고 큰 빚도 없다보니 다른 농부들에 비해 덜 절박할 수 있기도 하고요. 저의 지향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인 것 같아요.

 

몸은 고되지만, 밭에서 일하면서 기쁨을 느끼니까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빈 땅을 농사지어달라고 주시는 것이 갑자기 많아지더라구요. 사실 제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서 받아야 하는데, 제가 처음 받은 땅이 워낙 척박하고 어려운 땅이었어요. 그러다보니 그 다음에 받은 땅은 비교적 좋고, 그 다음은 더 좋고, 그 다음 땅은 정말 좋은 거예요. 밭을 갈다보면 좋은 밭은 느낌이 오거든요. 농부로서 좋은 땅에서 농사짓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기는 거죠.

 

그러다보니 일이 너무 많아져서 지금도 이게 잘한 일인지 고민이에요. 첫해에 1천평으로 시작했고, 동네 사람들이 조금씩 빌려주시면서 올해는 5군데 밭에 총 2천 5백평 농사를 짓고 있어요. 엄마가 도와주시기는 하지만, 혼자 감당하기 너무 벅차요. 해보니까 1천 평에 비닐하우스 1동이 저 혼자 할 수 있는 적정 규모 같아요.

 

이렇게 농사짓는 걸로 제가 굉장한 소득을 얻어서 땅을 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농사지으며 기쁨을 느끼고 있어요. 도시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힘들게 일하며 버티다가 퇴근 후의 재미를 찾아가는 삶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농사짓는 일상 속에서 기쁨을 찾는 삶을 살고 있거든요. 녹록치는 않지만 앞으로도 땅을 살리는 생명농사를 짓고 싶어요.

 

 

 

채소지 vol.2 마을 안에서 삶을 일구는 농부, 봉금의 뜰

첫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2-01/
두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2-02/
네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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