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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지 vol.1> 보리햇살농장,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_1/3

 

채소지
채소를 알고 기록하는 곳

똑같은 채소라도, 농부마다 수많은 채소의 맛이 있습니다.
채소지에는 채소를 키우는 농부의 삶과 농사 이야기를 담습니다.
흙과 풀과 벌레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하나의 숲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그곳에, 그 숲에서 자라나 지금 가장 맛있는 채소가 있습니다.
그 농부만의 특별한 채소 맛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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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봄 마르쉐에서 맛보았던, 싱싱한 아카시아꽃과 배추꽃을 그대로 얹어 만든 보리햇살농장의 크레페. 여린 꽃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나하나 거두어 계절의 맛과 향, 모양을 그대로 담아낸 한 접시는 지금 이 계절, 작은 농부들의 손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요리였다. 다시 아카시아꽃이 필 5월을 2주 앞두고, 홍성에서 농사터전을 다져가는 보리햇살농장을 다녀왔다.

 

‘제맛’이 있는 채소를 키우는 가족, 보리햇살농장
계절과 땅의 기운을 담아 그 채소만이 가진 독특한 ‘제맛’을 찾으며, 다섯 식구가 꾸려나가는 작은 농장. 시골에서 자라며 텃밭을 가꾸시던 어머니의 제철 밥상을 기억하는 이현숙 농부는 그 ‘맛의 원형’을 쫓아 옆지기 신보연 농부와 함께 농사를 짓고 가족의 밥상을 차렸다. 이제는 첫째 딸 신민주씨가 그 맛있는 채소로 젊은 요리를 만들어내고, 둘째 딸 신민하씨가 언니와 함께 새로운 채소의 맛을 찾아가며 씨앗을 뿌리고 있다. 막내인 셋째 아들 신민후씨는 생태 농사학교를 마치고 올해부터 가족의 농사에 뛰어들었다.

 

“봄꽃과 봄풀들이 져가는 가운데 여름꽃과 여름풀이 피어나는” 5월을 맞이하며,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보리햇살농장을 만났다.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보리햇살농장
첫 번째 이야기

 

 

자연의 힘과 손으로 일구는 다품종 소량 농사
“한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먹을거리를 모두 기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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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우리 농사는 그야말로 다품종 소량생산이에요. 한 가족의 밥상을 차리는데 필요한 먹을거리를 될 수 있는 한 모두 기르자는 생각으로 농사짓다보니 그리되었어요. 한 해에 60여 가지에서 많게는 100여 가지를 심게되요. 어느 한 작물도 겨우 대여섯평에서 열평 남짓 되는 이랑을 넘지 않게 재배하지요. 고추 마늘 양파 참깨 들깨 등 저장성있는 것들만 100평 남짓 크게 하고요. 우리와 식탁을 공유하는 50가구의 채소 꾸러미를 보낼 수 있는 정도의 농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한 밭에 다양한 작물들을 심으니까 서로서로 좋은 작용을 하는 것 같아요.

 

집 앞 꽃밭과 마을 들머리 꽃길을 가꾸는 것 말고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밭 4개를 빌렸으니까 2천여 평 될 거예요. 첫 번째 밭에는 마늘, 양파를 심었어요. 우리는 농약,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안 쓸 뿐만 아니라 비닐 덮개도 쓰지 않고, 왕겨로만 덮어줘요. 직접 풀을 매니 하나하나 손길이 닿은 밭이고요.

 

마늘밭 위에는 삼채, 참나물, 취나물, 땅두릅, 방풍나물, 아스파라거스, 곤드레 등등 여러해살이 작물을 심었죠. 밭 옆의 키 큰 나무들이 드리우는 그늘을 따라 음지에서 잘 자라는 것, 반그늘을 좋아하는 것, 웬만큼 햇빛을 받아야 하는 것 가려가며 어디 심을지를 따져가며 이랑을 배치했어요. 얘들은 부안에서 홍성으로 터전을 옮길 때 뿌리에 붙은 흙째 퍼왔어요. 다 정이 들어서요. 하나하나 심고 가꾸던 때의 손길과 마음과 추억이 고스란히 하나의 역사가 되었으니까요.  이런 여러해살이 작물은 한번 심어두면 그대로 몇 년 동안 땅을 안 갈고, 풀을 베어 덮어주면서 유기물이 풍성한 농사를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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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모종과 새싹을 기를 자그만 비닐하우스를 얻어 새봄맞이 농사를 시작했어요. 그 옆 네 번째 밭은 몇 해 묵은 밭이라 땅심이 좋아서, 자연농법으로 해볼 생각이에요. 풀이 아주 어릴 때 부지런히 매주면 풀이 없으니 풀 씨앗도 안 맺혀서 몇 년 지나면 풀이 별로 없게 되죠. 이제까지는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지어왔지만, 풀이 없으니 햇빛과 바람에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는 땅에 대한 부담감은 늘 있었거든요.

지지난해까지 살던 부안에서는 재래식 화장실에서 똥오줌 받아 퇴비로 만들어 썼어요. 깻묵과 부엽토로 웃거름도 만들어 썼고요. 그 퇴비로는 2000평 땅에 다 못주니까 토마토, 오이, 가지 등 열매채소와 배추나 무 같은 잎채소에만 아껴 썼죠. 돈주고 사서 쓰는 퇴비로 기른 작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과 향이 인상적이었어요. 지금은 아쉬운대로 소변을 받고 음식물 찌꺼기와 콩깍지 같은 농사 부산물을 퇴비로 만들어쓰죠. 웃거름은 방앗간에서 참깨 들깨 짜고난 깻묵에 산에서 긁어온 부엽토를 넣어 발효시켜서 쓰고요.

 

유기농으로 키운다고 해도 규모가 큰 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땅심을 길러 농사를 짓기가 정말 어렵죠. 생산량을 뽑아내야 하고 작물의 규격도 맞춰야 하니까요. 농사를 적게 지어도 삶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나가야 답이 나올거 같아요. 우리 가족의 경우는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고 몸으로 때우는 식이구요.

 

 

 

저마다 맛의 원형을 지닌 채소
“땅 속 유기물과 미생물의 다양성이 곧 맛과 연결돼요.
건강한 농사가 맛있는 농사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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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생협에 납품하는 농가도 보통 한 작물을 적어도 몇백 평, 몇천 평씩 짓더라고요. 게다가 가령 무는 1kg, 배추는 2kg 이상이 안 되면 등외가 되어 납품이 안 되니까 땅심에 의지하기보다 물과 퇴비를 많이 넣어 재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요.

 

신민주: 사람들이 아직 재료가 어때야 제일 맛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적은 듯해요. 유기농산물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는 거죠. 가령 유기농산물인데 모양이 다 똑같아요. 저는 모양이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맛도 다르고 그런 것이 조화를 이뤘을 때 재밌고 좋은 맛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이현숙: 맛이 획일화되는 거예요. 작물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다양하고 풍부한 유기물질과 미생물이 살아있는 그 맛이 아닌 거죠. “이게 진짜 맛이지” 생각하게 되는 채소는 정말 드물어요. 땅이 다르다는 게 중요해요. 그 땅속의 다양성이 곧 맛과 연결이 되니까. 가령 부엽토에는 오만가지 미생물이 들어있거든요. 똑같은 유기농이어도 비닐을 씌운 곳과 안 씌운 곳 등 어떤 밭에서 어떤 퇴비로 키웠느냐에 따라 맛뿐만이 아니라 영양에서 차이도 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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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가 95세로 올봄에 돌아가셨는데, 제 책 앞에도 우리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말을 썼어요. 맛의 원형에 대한 기억이랄까, “아, 이 맛이다”라는 감각은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서 길러졌구나 싶어요. 울타리 안팎, 마당 한 쪽에 갖가지 꽃과 채소를 섞어 심어 가꾼 텃밭에서 바로 채취해온 재료로 음식을 하셨거든요. 엄마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음식의 맑고 깊은 맛에 대한 기억이 제 안에 남아있어요. 그땐 화학비료가 나오기 전인데다 똥오줌 거름 써서 농사지었으니 다 유기농산물이었죠. 제가 어릴 적엔 공장에서 나오는 과자나 가공식품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던 때라 자극적인 감미료로 오염되지 않은 미각으로 고스란히 그 맛을 기억하고 있는 거겠죠.

 

그러고보면 옛날엔 채소를 어떻게 맛있게 키우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그대로 이미 맛있었으니까요. 농약, 화학비료를 쓰는 대량생산 농사가 많아져 그 맛이 사라지면서 맛에 대한 고민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제 농산물에는 어떻게 하면 땅이 살아있고, 햇빛과 바람 등 자연의 힘을 한껏 받아안는 농사를 지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 묻어있다고 할까요. 건강한 농사가 곧 맛있는 농사다. 그런 거죠.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신민주: 특히 봄나물은 정말 맛과 향이 달라요. 음식을 만들다보면 재료의 맛에 정말 민감해지게 돼요. 모양이나 색은 예뻐도 아무런 맛이나 향이 없고, 엄마 아빠는 ‘질소맛, 물맛’이라 부르는 심심함 밖에 없는 것들을 어찌 먹나 싶게 되고요. 가령 양배추만 해도 그 특유의 달콤한 맛이 시중에서 파는 양배추에서는 잘 나지 않아요. 우리 집 양배추는 정말 맛있거든요. 엄청 고소하고 질감 자체가 쫀득하달까. 씹는 느낌도 아주 달라요. 우리 집 양배추와 다른 곳에서 나온 양배추를 다 먹어보고 나서 음식 재료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자연의 신비함이 주는 힘
“농사는 저에게 선물이에요.
2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밭으로 갈 때마다 설레요.
같은 작물도 매일, 매 순간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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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제가 지금 63살인데 43살이 되어서야 농사를 만났어요.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싶더라고요. 일 욕심이 많아서 몸에 무리가 갈 때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죠. 민주가 저를 머신이라고 할 정도로, 일을 많이 해 버릇해서 쉬어가는 게 잘 안되더라고요.

 

초기 귀농했을 때는 새벽 4~5시부터 저녁에 해지고도 8시까지 쉬지 않고 일했어요. 지금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열심히 농사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근데 그때 5년 동안 농사지었던 것이 그 이후 농사지을 때의 자신감, 중요한 기반이 됐어요. 제가 잡지사 기자를 할 때도 글의 완성도를 위해 마감 전에는 며칠 동안 꼬박 새우고 이 짓을 왜 하냐, 다시는 글 쓰는 일 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귀농하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글이 수월하게 쓰이더라고요. 옛날에 숨막히게 글을 썼던 과정이 나에게는 훈련의 과정이 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농사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이젠 몸에 익어서 크게 어렵진 않아요.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하면 즐거움이 배가 돼요. 차차 일을 줄일 생각이에요. 어제는 모처럼 6시 전에 일을 끝내고 저녁밥을 일찍 해먹었더니 너무 여유롭더라구요. 식구들과 앞으로는 가급적 이렇게 느긋하게 일을 마치자고 했어요.

 

저는 농사짓고 사는 삶이 참 복된 삶이라고 생각해요. 43살에 만난 자연의 선물에 감사하게 되고요. 햇살, 바람, 비, 흙, 새싹이 자라서 몸집을 키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의 한 생애 그 자체가 생명력의 분출이잖아요. 그걸 흠뻑 느끼며 설레이며 사는게 좋아서 농사짓는거 같아요. 그런 복, 농사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많은 땅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마을 길과 집 주변에 꽃을 심어 가꾸는 걸 보면서, 농사일도 힘들 텐데 뭐 그런거 까지 하냐는 분이 있어요. 하지만 돈과 연결되지 않고 그저 아름다움을 일구는 그 행위야말로 나를 쉬게 하고 행복하게 해요. 물신화된 세상에 대한 나름의 저항인 듯싶기도 하고요. 여전히 아침에 밭으로 갈 때마다 설렘이 있어요. 같은 작물도 매일매일 다르고, 매 순간순간 다르니까. 자연의 신비함, 신기함, 오묘함이 힘을 줘요.

 

 

 

꾸러미로 이어지는 밥상
“같은 시기에 같은 농산물로 차려 먹으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밥상에 앉아있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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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농사를 지으면서 밥상에 올리는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직접 농사지어 먹겠다는 생각이 굳어져 왔어요. 그래도 생활에 필요한 현금을 구해야 하고 사람들과 나누고 싶으니까 꾸러미를 하게 되었어요. 제철에 나는 채소와 곡식, 그 가공품 열댓 가지를 상자에 담아 꾸러미로 보내드리죠. 우리 꾸러미 회원들과 우리 가족은 식탁 동지에요. 한솥밥을 먹는 건 아니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농산물로 만든 음식으로 밥상에 차리니까,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 밥상에 앉아있구나 싶은 느낌으로 뿌듯해질 때가 많아요.

 

우리 농사에 공감하는, 5년 넘게 이어온 단골 회원들이 꾸러미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어요. 집밥과 전통음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5~60대 가족과 아이들에게 좋은 걸 먹이려는 3~40대 젊은 부부들이 주 회원이고요. 혼밥세대가 많아져서 그런 분들의 처지에 호응하는 1인용 꾸러미도 고민하고 있어요. 도시 소비자들의 필요를 어떻게 받아안고 함께 가야 하나 하는 것이 늘 숙제예요.

 

꾸러미 회원을 그만하는 경우를 보면 그간 자식들이 다 커서 떨어져 살게 되니 가족 구성원이 감소한 가족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받은 채소를 다 못먹어 미안하다는 이유도 있고요. 도시에 사는 분들도 저마다 바쁘니까 원물보다는 반찬류를 많이 해주길 바라죠. 그래서 우리도 우엉은 조림해서 보내고, 열무나 알타리, 갓은 김치를 담그고 깍두기나 장아찌, 피클류로 만들고, 샐러드 드레싱도 함께 보내는 등 노력을 해요. 가공도가 높으면 소비자는 먹기가 수월하니까요. 어제는 꾸러미에 보낼 열무김치를 담갔어요. 남편이 김치 등등 요리를 잘하고 아이들도 모두 요리나 텃밭농사에 감각이 있으니 든든해요.

 

꾸러미 신규회원을 모시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정말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요.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먹을 만큼 농사 짓고 적게 쓰는 삶
“농사가 건강한 삶의 바탕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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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 우리 가족이 먹고 살 만큼만 농사지으려 하다보니 소비를 적게 하는 삶의 방식을 몸에 익혀야했어요. 식구들의 밥상을 차릴 수 있는 농사,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 정도를 버는 농사, 아이들이 지속 가능하게 농사짓는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는 농사 정도만 되면 좋지요.

 

농사로 먹고산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도시 사람들이 말하는 소비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맞지는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처럼 살고 싶은 사람들은 시골에 오지 말라고 저는 얘기해요. 돈을 적게 벌어도 농사지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멋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더라도 몸이 무리가 가도록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농산물값이 턱없이 싸고 농민기본소득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낮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농사가 건강한 삶의 바탕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방향에서 농정이 이뤄지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현실은 아득하죠.

 

그래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아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농부로 살려면, 생각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해요. 개인의 삶을 사회와 연결 짓는 폭넓은 시야가 없으면 농민의 당당한 자부심을 갖기 어려운 구조니까요. 그래서 저도 농사짓는 시간과 에너지의 1/10은 농민 기본소득이나 의료와 주거 등 농부 한 사람의 삶에 제도적으로 필요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가는 일에 나누려고 하죠.

 

유기 농부로서 자립의 기반을, 지금처럼 에너지가 많을 때 만들어두고 싶은데, 이래서 채소 농사를 지어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지난 몇 년 사이 너무 가물고 날씨가 죽끓듯 해졌어요. 올해도 봄 가뭄이 심하고, 겨울에는 눈도 없고, 봄도 늦고. 기후변화 때문에 예측이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졌어요. 관수 시설이 있어 물을 바로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지점이 더욱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농사가 힘들다는 생각보다 복이구나 싶을 때가 더 많아요. 정말로. 

 

 

 

농부시장이 할 수 있는 일
“좋은 먹거리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손님들과 만나면 반갑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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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우리는 자급자족하고, 생태적이고, 자연의 흐름과 함께하는 농사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그것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이 확장되면 좋겠어요.

 

시장에서는 좋은 식재료가 늘 가격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많거든요.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 가공도 중요하지만, 재료의 맛이 그 자체로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가공된 자극적인 맛이 자연의 맛과 비교되면서 자연의 맛이 위축되는 부분도 있어요. 좋은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고민해나갔으면 해요. 유기농이 기본이 되는 시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을 더욱 가까이 접하고 알 수 있게 하는 역할을 농부시장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르쉐 고객들이 좋은 먹거리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점이 좋고, 생각과 삶이 통하는 그런 손님을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는 순간이 늘 반갑고 좋았어요. 그런 사람은 딱 몇 마디만 나눠보면 금방 쿵짝하고 이야기가 통하거든요. 저는 파는 것을 잘 못 하기도 하니, 그런 손님을 만나는게 더욱 좋았죠.

 

앞으로는 우리 아들 민후가 마르쉐에서 손님들을 만날 거예요. 시장에서 그런 마음이 통하는 손님들을 만나고, 다른 농부들이 다양한 형태로 농사를 자기 삶으로 가져가는 면도 보면서 농부로서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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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 vol.1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보리햇살농장

두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1-02/
세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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