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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지 vol.1> 보리햇살농장, 가족이 함께 짓는 채소의 맛 _2/3

 

 

채소지
채소를 알고 기록하는 곳

똑같은 채소라도, 농부마다 수많은 채소의 맛이 있습니다.
채소지에는 채소를 키우는 농부의 삶과 농사 이야기를 담습니다.
흙과 풀과 벌레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하나의 숲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그곳에, 그 숲에서 자라나 지금 가장 맛있는 채소가 있습니다.
그 농부만의 특별한 채소 맛을 전합니다.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보리햇살농장
두 번째 이야기

 

 

가족의 농사를 함께 짓는 요리
“직접 요리하면서 맛의 차이나 깊이에 대해 깨닫게 되었어요.
새롭게 요리하며 채소의 맛에 대한 발견을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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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민주가 대학 다닐 때 서울에서 지낼 생활비와 학비가 필요해서 마르쉐를 같이 나가기 시작했어요. 농산물을 팔면서 민주가 제철 채소로 조금씩 음식을 만들어보게 된 거죠. 사실 저는 민주 졸업하면 마르쉐 나가는 것도 그만둘 생각이었어요. 근데 그때 민주가 자기가 마르쉐에서 계속해보면 안되냐고 해서 민주의 요리 중심으로 출점하게 되었죠.

 

신민주: 제가 잘할 수 있고 실제로 하는 과정이 가장 재밌는 일은 요리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 전공했던 조소와 요리의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생각을 하고 컨셉이 나오면 그에 맞춘 재료를 구하며 배우고, 그러면서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근데 요리는 미술보다 훨씬 사이클이 빠르죠. 제 성격이 급하다 보니 그게 잘 맞아요.

 

요리를 하면서 맛의 차이나 깊이에 대해 깨닫게 되었어요. 저는 나물을 옛날부터 엄청 좋아해서 계속 먹어왔어요. 그 나물 고유의 맛을 좋아했던 건데,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요리를 통해 그 맛을 보여줘야하니까 맛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나물 종류는 아무리 유기농, 친환경이라도 사서 쓰지 않아요. 집에서 늘 먹어왔던, 제가 아는 그 맛이 안나오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요. 특히 취나물, 참나물등은 향이 없어서 양을 너무 많이 써야 하거든요. 저는 요리에 설탕을 거의 안 넣는데, 요즘 세대는 점점 미각에 무뎌지고, 달고 맵고 짠거를 많이 먹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맛있는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운 이유도 있겠죠.

 

제가 단순하게 요리할 수 있는 이유도 재료가 그 자체로 맛있기 때문이에요. 저희 농장에서 온 채소는 어떻게 키우는지 잘 아니까 얼마나 씻어야할지, 어떻게 다듬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무엇보다 그대로도 맛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물론 비슷한 크기에 잘 다듬어져서 나오는 시중 농산물에 비해 손질하는데 손이 더 가긴 해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으니까 절충이 돼요.

 

이현숙: 민주는 텃밭과 요리의 경험을 두루 거치기도 했지만 미각이 예리한 면이 있어요. 어렸을 때 인공감미료 등을 많이 먹어 미각이 퇴화한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맛’을 아는 거죠. 예술을 해온 민주에게는 음식도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조의 세계더라고요. 미적 감각과 맛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저는 죽었다 깨나도 상상하지 못할 재료의 조합을 요리로 만들어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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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 요리를 하다 보면 건강한 거랑 맛있는 것이 꼭 같이 가는 건 아니에요. 건강한 재료가 맛있는 건 맞는데, 건강한 재료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너무 다른 맛이 나와요. 저는 엄마의 나물 요리를 좋아하지만, 안 좋아하는 요리도 있었어요. 엄마가 해준 대로 먹을 땐 몰랐는데 제가 새롭게 요리해보면서 맛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채소도 종종 있었고요. 엄마의 나물 요리가 맛있는 이유가 엄마는 나물 본래의 맛에 집중하는 요리를 해요. 재료가 맛있는 시대를 살았으니 그런 요리를 할 수 있었던 건데, 제가 사는 시대는 있는 그대로 맛있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으니까. 그래서 저는 제 식대로 요리를 하면서 채소의 맛을 새로이 발견할 때가 많았어요.

 

저는 레스토랑에서 일할 생각은 없고 지금이 좋아요. 마르쉐 출점, 쿠킹클래스, 케이터링, 메뉴 개발, 팝업 레스토랑. 다 제가 평소에 하고 싶은데 못했던 부분을 나눠서 하고 있어요. 마르쉐는 그때그때 나는 작물로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것. 팝업은 마르쉐에서 못했던, 불을 쓴다거나 더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하는 것. 케이터링은 비주얼과 설치를 더 신경 쓰는 것. 만약 제 가게가 있다면 이런 걸 한꺼번에 할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게 하면서 제 개인시간을 확보하고, 전공인 미술작업도 병행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어요. 셰프로 이름을 알리겠다는 생각은 없고, 지금처럼 하면서 규모를 조금 키우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아직은 명확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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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농장과 함께 가는, 가게가 없어도 항상 가능한 요리를 하고 있다는 거에요. 가족이 농장을 하니까 어떻게 기르는지 100% 믿을 수 있고, 제가 필요한 재료를 요청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아요. 어딜 찾아가거나 농부와 신뢰관계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까. 가족들이 농사를 지으니까 저도 요리를 시작하게 된 거거든요. 요즘은 전세계적으로 레스토랑이 자기 농장을 갖고 있는 게 추세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맛이 너무 달라지니까.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지도 달라지고. 저는 요리를 직접 해봐야 작물을 키울 때 어떤 걸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감이 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농부로 살겠다는 민후에게도 요리를 해보라고 해요.

 

어렸을 때는 도시에 살다 갑자기 부모님이 귀농해서 시골에 버려진 기분이었어요. 벌레도 많고, 놀 친구도 없고, 부모님은 농사짓느라 늦게까지 안 오시고. 그런데 동생들은 아기 때부터 흙에서 뒹굴며 자라나서 자연에 대해 느끼는 게 저와는 다르더라고요. 저는 벌레도 무섭고 늘 공포상태였거든요. 예전에는 밭에도 못 들어갈 정도였는데 요리를 하면서 농사를 다시 만나게 됐어요. 벌레는 여전히 친해지기 어렵지만 농사는 요리에 굉장히 필요한 존재니까 눈 딱 감고 휘젓고 다닐 정도는 되었어요.

 

 

이현숙: 민주는 마르쉐가 없었으면 우리의 삶의 방식과 접속 자체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도시적 감수성이 강하고 어렸을 때 귀촌해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기에 쉽지 않았을 텐데, 마르쉐를 통해서 중요한 접속지점이 생긴 거예요. 아이들 셋이 모여앉아 씨앗 얘기, 모종 얘기 나누는 것 보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죠. 그런 접점이 생긴 게 참 다행이에요.

 

 

 

대를 잇는 농사
“사람이 자연에 가장 적은 피해를 주며 살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면서 농사를 떠올렸어요.
가족이 함께 농사지어서 맛있는 채소를 전하는 과정을 사람들이 알아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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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후: 저는 엄마 아빠 농사지을 때 밭 따라가서 고랑에 누워있고, 당근 바로 뽑아먹고 밭에서 놀고. 그 기억이 아직도 좋게 남아있어요. 누군가 저한테 어떻게 농사짓고 살겠다는 맘을 먹었냐고 묻는다면 그때의 기억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이라고 말할 거 같아요. 중고등, 대학과정을 쭉 농사를 배우는 학교를 다니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있었던거고요.

 

이현숙: 민후가 중등과정으로 실상사작은학교에 다닐 무렵 농부가 되겠다고 말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농사짓는 삶이 뭔지를 알 수 있도록 교육적 배치에 공을 들이긴 했지만 스스로 선택할 때까지 한참 기다리려고 했거든요. 이제 우리 집 농사는 무게중심을 민후에게 옮기려 하고 있어요.

 

 

신민후: 고등학교는 변산공동체학교로 갔는데 오후에 대부분 농사수업을 했어요. 농사를 배우며 여러 가지 품종을 조금씩 다양하게 길러보거나,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밭을 맡아보는 경험을 더 해보고 싶어서 대학과정도 풀무학교 전공부로 갔어요.

 

사람이 살면서 땅을 망가뜨리지 않고 살수는 없는데, 자연에 가장 책임있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땅에 가장 적은 피해를 입히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을 때 농사가 떠올랐어요.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고, 농사를 통해 자립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농사의 기반을 마련하고 나면 규모를 좀 더 줄였으면 좋겠어요. 즐기면서 할 수 있을 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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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저는 농사기술만 갖추면 행복한 농부가 되는 게 아니야, 생각하는 농부가 되어야 해, 라고 말하죠. 한국처럼 농사가 천대받는 사회에서 소농의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22살 젊은 나이에 농부로 산다는 것은 더욱 더 그렇죠. 인문학적인 소양을 가지고 자기 삶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갖추지 않으면 자존감을 갖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 비전을 가져가려면 다양한 상상력과 계기가 필요해요. 마르쉐 채소시장에 출점하는 건, 큰 누나인 민주가 민후에게 농부로서 안목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넓히는 기회가 될 거라며 강력하게 추천한 덕분이에요.

 

신민주: 어떤 사람이 자기의 농산물을 찾아오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해 먹는지를 알면 농부로서도 농사의 질이 확 달라지니까요. 다양한 농부들의 삶과 교류하는 경험도 열릴 수 있기도 하고요.

 

신민후: 저는 마르쉐 시장에서 손님을 대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큰누나가 요리한 걸 보고 관심 갖는 손님들에게 “이 유채도, 저 시금치도 제가 직접 기른 거”라고 너무 이야기하고 싶더라고요. 가족이 함께 농사지어서 맛있는 채소를 전하는 과정을 사람들이 알아주면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즐겁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만나는 일
“농산물 정보보다 농사짓는 일의 뿌듯함과 기쁨을 함께 전하고 싶어요.
씨앗에서 싹이 틀 때, 너무너무 행복하고 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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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하: 저는 지금 직장을 다니면서 가족과 농사를 같이 지어요. 하는 일이 지역을 알리는 일이다보니 업무의 일환으로도 저만의 텃밭 농사를 50평 정도 지으며 기록하고 있고요. 농사가 힘들지만 해야만 하고 극복해야 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굉장히 즐겁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담는 영상을 찍고 있거든요.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 농산물이 내 식탁에 올라왔을 때의 뿌듯함과 기쁨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찍고 있어요. 손님들이 단순히 농산물의 정보를 가져가기보다, 농사짓는 일의 뿌듯함과 기쁨을 함께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해요.

 

마르쉐 농부님들 인스타그램 보면 나름의 이야기들이 다양해서 무척 재밌었어요. 자기가 농사지으며 신기하고 궁금한, 재밌는 것을 올렸을 때, 그것이 보통의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엄마는 그걸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있는 ‘경작본능’을 건드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농부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모를 때는 이 작물을 어떻게 키웠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요? 내가 농산물을 어떻게 돌봤는지 물어보면 신나서 이야기하고 싶을 거 같아요. 판매하려고 가지고 나온 것에는 농부 나름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신민주: 맞아요. 지금 농장에 무엇이 제일 많냐는 질문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저희 가족 농장에서도 늘 신경 쓰고 있는 것이자, 늘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무엇이 많다는 건 그것이 제일 잘 자랄 수 있는 철이자 환경이라는 뜻이니까요. 저는 잘 몰라도 동생이 잘 아니까, 지금 이 채소가 이렇게 자라서 가장 맛있게 많이 나올 때니까 이렇게 요리했다고 우리는 답할 수 있어요. 농부에게는 그 질문이 절대 실패하지 않는 질문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무엇이 제일 많냐, 그 농부의 제철을 챙기는 질문.

 

민하가 씨앗을 싹틔우는 데는 정말 금손이에요. 새로운 것 심어보는 걸 좋아하고 잘 키워내요. 아빠는 모종 키우기의 달인이고요. 저는 주로 요리를 맡고, 엄마와 민후는 밭이 제 모양으로 돌아가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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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하: 씨앗을 잘 키우는 비법은 관심인 것 같아요. 저는 씨앗을 싹틔워 모종으로 키워낼 때 하루에 네 번쯤은 들여다봐요. 서리가 살짝 풀리면서 온도가 높아지는 아침 8시쯤 덮개를 열어주고, 11시에는 기온이 올라가니 하우스 문을 살짝 올리고, 한낮에는 문을 활짝 열어주고,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쯤 문을 닫아주는 거죠. 시간과 온도에 따라 세심하게 필요한 것을 살피고 돌봐줘요. 특정 온도와 습도, 햇빛에 맞추어 모종이 싹이 나는 건데 그 조건은 조금만 공부를 하면 다 배우게 돼요. 저는 그만큼 관심이 있으니까 배운 대로 열심히 돌보는 것 뿐이에요.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모종을 키우는 것은 정말 아기 키우는 느낌이에요. 어느날 밭에 갔더니 3-4종류의 모종에서 싹이 텄는데 정말 아이 열댓명 낳은 기분이더라고요. 그럴 때 너무너무 행복하고 신나요.

 

신민주: 오늘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이제 서울 집에 화분에라도 뭔가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동안 옥상텃밭을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뭔가 기대하는 게 있어야 아침에 일어나는게 설레는데, 무언가를 심으면 일어날 힘과 설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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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지 vol.1 채소 맛의 원형을 찾는 농부가족, 보리햇살농장

첫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1-01/
세 번째 이야기 : http://www.marcheat.net/chesoji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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